수원지검이 불법출금의 핵심 피의자인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해 지난달 말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신청도 검토했던 것으로 29일 전해졌다. 수심위는 교수,변호사 등 외부인사들이 기소 정당성과 수사 필요성을 판단하는 제도로, 주로 피의자들이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해 신청한다. 대검의 ‘기소 뭉개기’가 예상되자 수사팀이 차라리 외부 판단을 받겠다는 생각에 수심위까지 검토했던 것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지검 형사 3부(부장 이정섭)는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기소한 직후인 지난달 13일 대검찰청에 이 비서관에 대한 기소 결재를 올렸다.이 비서관은 이미 ‘불법 출금’혐의로 기소된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과 이규원 검사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등 불법 출금 전반을 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결재권자인 조남관 전 총장 직무대행과 신성식 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이에 수사팀은 지난달 중순 다시 결재를 올렸지만 대검은 ‘범행 의도에 대한 보강이 필요하다’ 등의 이유를 대며 승인을 하지 않았다. 이미 수사팀은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 이 비서관이 김 전 차관이 긴급출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판단했었다.
◇”우리가 먼저 신청하자” 검찰, 이광철 기소에 자신감
그러자 지난달 말쯤 지휘부인 오인서 수원고검장과 송강 차장검사, 이정섭 부장검사가 모여 이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부칠 것을 검토했다. 피의자가 아닌 수사팀이 수심위를 신청한 것은 전례가 없다.
하지만 수사팀은 대검이 사건을 뭉갤 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차라리 수사팀이 선제적으로 수심위를 신청해 기소 정당성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검찰이 기소 판단을 외부에 떠넘기는 ‘방어적’ 수심위가 아니라 외부 인사들에게 기소정당성을 설득하는 공격적인 방안으로 생각한 것이다.
직전에 ‘성공 사례’도 있었다. 이성윤 고검장의 경우 이 고검장이 외부인사들에 의한 불기소 결정을 노리고 수심위를 신청했지만 수사팀이 수심위원들에게 기소 필요성을 설득해 압도적 찬성으로 ‘기소’결정을 이끌어냈다. 이 고검장은 수심위 이틀 후인5월12일 기소됐다.
수심위 관련 규정상 검찰도 수심위 소집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고검장의 경우에도 그가 수심위 신청한 직후 검찰이 ‘맞불’로 수심위를 신청해 절차가 진행됐었다.
◇”한번 더 대검 믿어보자 “보류했는데.. 기소결정은 ‘깜깜’
이처럼 수심위 신청을 유력한 대안으로 검토했던 수원지검은 결국 수심위 신청을 보류했다고 한다. 기소권을 가진 수사기관이 먼저 수심위를 신청한 전례가 없고, 대검을 한 번 더 믿어보자는 판단 때문이었다.그러나 대검은 그 직후 수사팀이 올린 기소 결재를 “대검 지휘부가 인사로 곧 교체될 예정”이라며 승인을 내지 않았다. 수사팀은 지휘부 인사 후 보강 수사까지 거쳐 지난 24일 다시 기소결재를 올렸지만 대검은 29일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결재권자인 김오수 검찰총장과 문홍성 반부패부장이 모두 이 사건에 연루돼 ‘회피’ 상태라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가 결정권을 쥐고 있다. 수사팀장인 이정섭 부장검사가 중간간부 인사에서 대구지검으로 좌천 발령을 받아 부임일(다음달 2일)까지 3일도 채 안 남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팀이 최후의 방안으로 수심위 신청까지 검토한 것은 그만큼 대검이 사건을 뭉갤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라며 “한번 더 대검을 믿어 보자고 보류했는데, 이렇게까지 지연될 것은 생각 못했을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