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군사법원은 남성 군인 간의 항문성교나 성추행이 적발되면 그 자체로 군형법 제92조의6(추행) 조항을 적용해 처벌해 왔다. 대법원도 2008년, 2012년 판례로 이를 뒷받침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해당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었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한 모습.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중위 A씨와 상사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불법성’ 판단에 대한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판례를 변경했다.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 합치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 군 내부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軍紀)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법조계와 군 안팎에서는 “사실상 군내 동성애를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심리의 쟁점은 2016년 중위 A씨와 상사 B씨가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합의하에 몇 차례 동성 성행위를 한 것에 대해 군형법 92조의6으로 처벌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피고인 A씨 등은 2017년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면서 적발됐다. 이전 2008년, 2012년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면 이들은 ‘성관계 합의 여부’ 등을 따질 필요도 없이 유죄였다.

그러나 이번에 전합은 사실상 11(무죄) 대 2(유죄)로 기존의 판례를 뒤집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8명은 ‘무죄’ 다수의견을 통해 “항문성교는 이성 간에도 가능한 행위여서 현행 규정은 동성 성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동성 성행위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이들은 또 A씨 등을 처벌할 경우 “합리적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안철상·이흥구·김선수 대법관도 무죄 판단에 동의하면서 다수 의견 일부에 이견(異見)을 제시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안·이 대법관은 군 형법의 보호법익에 성적 자기결정권은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합의하에 이뤄진 성적 행위에 대해 군기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현행 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유죄’ 반대 의견을 낸 이는 조재연·이동원 대법관, 두 사람이었다. 이들은 “현행 (군형법) 규정은 행위의 강제성이나 시간·장소 등에 관한 제한 없이 남성 군인들 사이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라며 “다수의견은 현행 규정이 가지는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넘어 법원의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 관계자는 “합의에 의한 남성 군인 간 성관계도 군기를 침해할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는 “가령, 중대장과 사병 간에 동성 성관계가 적발됐을 경우, 장소·시간 그리고 상하 관계 등을 고려해 군기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군형법 92조6항의 존폐를 두고 기독교단체와 성소수자단체는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대법 결론에 대한 반응도 엇갈렸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 등 진보 대법관이 법리적 판단보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윤리적 가치관을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는 “동성 간 성행위 자체로는 어떠한 처벌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며 “헌재의 조속한 위헌 결정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헌재에 다시 계류 중인 동일 사건 헌법소원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