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에 대해 해양경찰청은 당시 7일 만에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단정적 결론을 내놨다.
하지만 당시 해경이 ‘자진 월북’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상당수는 과장되거나 비약이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해경 내부에서 “’자진 월북’에 방점을 두라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침이 허술하고 성급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이어졌던 것”이란 증언이 나왔다.
이씨 피격 이틀 뒤인 2020년 9월 24일, 해경은 당시 수사 관련 내용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신동삼 인천해경서장은 “국방부 관련 첩보 등을 종합해 볼 때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상세하게 조사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인 2020년 9월 29일 중간 수사 발표 때 해경은 단정적 결론을 내놨다. 당시 윤성현 해경 수사정보국장은 “국방부를 방문해 확인한 사항”이라며 ‘자진 월북’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국방부 방문 조사를 통해) 북측에서 실종자의 인적 사항을 소상히 알고 있었으며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 등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에 따르면, 당시 해경 수사팀은 국방부에 가서 ‘감청 녹취 파일’을 직접 들은 게 아니라 글로 옮긴 녹취록을 열람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자료가 아니라 첨삭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2차 자료를 조사한 것은 정상적 수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경은 9월 29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뿐만 아니라 10월 22일 발표 때도 이씨의 개인 정보인 채무 금액, 구체적 도박 횟수와 시기 등을 세세히 공개했다. 그러면서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경이 근거로 제시한 어업 지도선의 슬리퍼, 이씨 도박 빚의 규모, ‘정신적 공황 상태’라는 전문가 의견 등은 ‘자진 월북’ 근거로 보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당시 “선미 갑판에 남겨진 슬리퍼는 실종자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씨가 슬리퍼를 벗고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취지인 셈이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이 슬리퍼에선 여러 명의 DNA가 나와 이씨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씨가 이 슬리퍼를 신었다”는 일부 직원 진술만으로 이씨 것이라고 단정해버린 것이다.
해경은 2차 발표 때 “이씨의 빚이 총 3억3000만원 정도이고, 그중 도박으로 생긴 빚이 2억6800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작년 7월 인권위는 해경 발표에 대해 “(이씨의) 도박 빚을 2배 이상 부풀려 발표하는 등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발표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씨가 당시 도박 빚 등으로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당시 해경이 자문한 전문가 7명 중 1명만 ‘정신적 공황 상태’라는 표현을 썼다”면서 “추측과 예단에 기초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홍희 전 해경청장은 본지에 “민정수석실에서 전화받은 사실도 없고 월북에 중점을 두고 수사하라는 지시도 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본지는 윤성현 전 해경 수사정보국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고, 김종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측은 “김 전 수석은 해경 수사에 관여한 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