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첫 대법관 후보자인 오석준 후보자가 지난달 29일 청문회를 마쳤지만 9일 현재까지 청문보고서조차 채택되지 않았다. 대법관으로 최종 임명되려면 보고서 채택 후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첫 단계조차 넘지 못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이른바 ‘800원 판결’이 거론된다. 오 후보자가 2011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시절 운송수익금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한 사건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가장 비정한 판결’이라고 비판했고 오 후보자는 “결과적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 노사합의서 “횡령 금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해임”
문제가 된 사건은 2011년 한 버스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를 구제한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이다. 당시 중노위는 운송수익금 중 각각 5200원을 횡령한 A씨, 800원을 횡령한 B씨 두 명에 대한 회사의 해고를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징계사유인 것은 맞지만 횡령이 고의적이거나 계획적이라고 보이지 않고 같은 이유로 해고까지 한 사례는 없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2010년 9월 16일 승객으로부터 6400원 요금을 받고 운행일보의 현금란에 6000원이라고 적었다. 같은해 9월 28일도 마찬가지로 6400원을 받고 6000원으로 적었다. A씨도 같은 방식으로 운송수익금 중 400원씩 총 13차례를 차이나게 적었다. 회사의 영업차장은 이 같은 사실을 CCTV로 확인하고 자진 사직할 것을 요구했지만 B씨가 거부하면서 4000원을 놓고 나갔고, 회사는 B씨에게 4000원을 돌려주고 그를 해고했다.
회사의 해고 근거는 단체협약이었다. 협약 42조는 “회사는 조합원이 회사 재산을 횡령 또는 운송수익금을 부정 착복한 증거가 확실한 자는 노조지부와 협의없이 해고한다”고 돼 있다. 단체협약을 구체화한 취업규칙 56조도 ‘종업원이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때는 해고시킨다.’며 5호에 ‘회사의 재산 및 공금을 횡령하였을 때’를 규정했고, 벌칙 규정에도 ‘56조에 해당하는 자는 해고를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 “회사 수익금 자체가 ‘잔돈’..횡령 않아야 하는게 당연”
재판에서는 이들 근거규정에 따른 해고가 가혹한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회사는 승객들이 내는 요금 외에 별다른 수익금이 없으므로 수익금을 전액 회사에 납부하리라는 신뢰가 기본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A,B씨가 횡령한 승객 1인당 400원은 운송요금의 6.25%(=400/6400×100)에 이르므로 운송수익의 거의 대부분에 이른다”고 했다. 이 회사 수익률이 운송요금의 7%에 불과한 이상 그 금액은 요금 중 잔돈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따라서 잔돈을 횡령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단체협약, 노사합의서, 종업원징계규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운송수익금 횡령은 해임 외에 다른 징계처분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2006년 5월 1일자 노사합의서에 따르면 ‘운전원의 수입금 착복이 적발되었을 시에는 그 금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위와 같이 운전기사의 운송수입금 횡령에 대하여 엄격한 징계양정을 규정한 것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격리된 공간에서 혼자 일하는 데다 운송수입금이 버스회사의 주된 수입원이므로 횡령으로 인한 신뢰 손상이 큰 것임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A씨와 B씨도 입사 당시 ‘운송수익금 횡령시 어떠한 처벌을 받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비록 두 사람이 징계처분을 받은 전력이 없고 횡령금액이 적더라도 위와 같은 점을 종합할 때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귀책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마음이 무겁다’ 오 후보자 대응 두고 법원 내 이견도
법원 일각에서는 ‘800원 판결’에 대해 ‘마음이 무겁다’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버스회사에서 운송수익금이 계속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자 월급을 올려주면서 단체협약에서 횡령에 대해 해고를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 것으로 안다”며 “이런 전후사정이 있고, 금액을 불문하고 횡령의 경우 해고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판결문에 명시됐는데도 제대로 된 해명 없이 마치 판결이 잘못된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마음에 안 드는 후보자여서 ‘친(親)김명수’ 판사들로 구성된 청문회 준비팀이 저자세로 일관하도록 한 게 아니냐는 말까지 돈다. 이에 대해 행정처 관계자는 “준비팀의 목적은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해 임명되는 것이다. 정말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800원 판결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법조계에선 오 후보자 인준이 당분간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의 검찰 소환 등으로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