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단 혐의를 받는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조직원들의 공소장에는 이들이 “사법농단(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핵심 세력 다수에 대한 인적 청산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에 대한 여론전을 담당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23일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15일 자통 총책 황모(60)씨, 조직원 성모(58)씨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범죄단체 활동 혐의로 구속 기소한 바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자통 총책 황씨는 2018년 8월 28일 밤 창원에 있는 한 주점에서 다른 자통 조직원 성씨를 만나 북한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과 주고받은 지령, 보고 상황을 공유하고 자통의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통 조직원들은 2016~2019년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북한 공작원 김명성과 신원을 알 수 없는 북한 공작원 2~3명을 접촉한 것으로 조사됐다.
황씨와 성씨가 그날 ‘사법적폐 청산 및 공안기구 해체 여론전’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검찰은 공소장에 “황씨는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투쟁과 관련해 성씨로부터 경남진보연합 정책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보고받으면서, ‘분단 적폐 청산의 내용으로 사법적폐 청산과 국가정보원 등 공안기구 해체를 주장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논의했다”고 적시했다고 한다. 당시 성씨는 ‘경남진보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정책위원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황씨는 ‘사법농단 핵심 세력 다수가 현재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으니 그 인적 청산이 선행돼야 하며, 국군기무사령부 등의 해체와 국보법 철폐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도 논의했다”며 “그에 대한 여론 환기와 홍보가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면서 (다른 자통 조직원) 정모씨에게 SNS 등 여론전을 담당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고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검찰은 “황씨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했다”고 했다고 한다.
두 자통 조직원이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인적 청산이 선행돼야 한다’는 등의 대화를 나눈 2018년 8월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법원 조사와 검찰 수사가 이뤄지던 시기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 이후부터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도입 로비, 재판 거래, 법관 블랙리스트 등 의혹을 포함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다며 판사들을 상대로 대규모 ‘적폐 청산’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100명 넘는 판사가 검찰 조사를 받았고, 판사 수십 명이 징계를 당했다. 실제로 이들 중 상당수가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나기도 했다.
추후 이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은 총 14명이다. 그 중 6명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4명은 아직도 1심이 끝나지 않았고, 판사 2명은 2심까지 무죄가 선고된 상태다. 나머지 2명의 전직 판사는 2심에서 유죄가 선고돼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법관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고, 이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 등이 민주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때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이다. 한 법조인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자통 조직원들이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여론전까지 관여했던 정황이 드러난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