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최말자씨 재심(再審) 개시 여부를 1년8개월째 고심 중이다. 우리 형사소송법(420조)상 재심 사유는 유죄판결을 내리게 된 증거물이 위조된 사실이 확인되거나,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됐을 때, 사건에 관여한 판사·검사·경찰관이 직무 관련 죄를 저지른 사실이 증명됐을 때 등 7가지다.

과거 납북 어부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12일 춘천지법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 귀환 어부 32명에게 50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인혁당 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재심 개시를 결정한 사례도 있다. 이후 법원은 2007년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모두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사유가 있었고, 의문사진상규명위 등 공적 기관의 조사 결과가 뒷받침되기도 했다.

대법이 최씨 사건의 재심을 개시할지 고민하는 이유는 이 사건들과 다소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공적 기관의 조사 과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충분한 증거 수집이 이뤄지지 못했다. 최씨가 ‘중상해’ 무죄 증거로 주장한 가해 남성의 신체검사 1등급 판정과 베트남 파병에 대해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혀 절단으로 발음이 곤란했던 만큼 중상해가 맞는다”고 했다. 검사의 불법 구금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사의 부적절한 재판 진행은 “성차별이 뿌리 깊은 사회적 상황에서 이뤄진 것으로 지금의 잣대로 범죄를 구성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최씨가 명백한 성범죄 피해자인 만큼 대법이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최씨 판결이 현재의 기준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만큼, 재심 사유 해당 여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