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6일 열린 첫 재판에서 “비상장 법인이나 그런 책임(횡령ㆍ배임)은 저에게 있다”며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송금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뇌물 공여 등의 혐의에 대해선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신진우)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뇌물 공여,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받는 김 전 회장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직접 재판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은 연갈색 수의를 입고 갈색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이었다. 그는 재판부 앞에서 인사를 두 번 세 번 거듭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김 전 회장과 양선길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은 “피고인 김성태에게 ‘불법영득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법적으로 횡령 행위로 볼 수도 없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횡령 및 배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불법영득의사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제 마음대로 처분하려는 의사를 말한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쌍방울 그룹 계열의 5개 비상장회사 자금 538억원을 횡령하고, 그룹 계열사에 약 11억원을 부당하게 지원하도록 하는 등(배임)의 혐의를 받는다.
김 전 회장 변호인은 “문제가 된 비상장회사들은 사실상 피고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1인 회사(페이퍼컴퍼니)에 해당하고, 이들에게 조달된 자금은 모두 피고인의 주식 등 개인 재산을 담보로 제공됐다”며 “대출금을 모두 변제해 회사와 금융기관 모두 피해가 없어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든 자금은 사실상 김 전 회장의 재산인 데다, 실질적 피해가 없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또 변호인은 “피고인과 하나의 경제적 공동체로 볼 수 있는 관계회사 간 거래라 횡령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변호인은 “거래가 이뤄진 그 자체의 사실관계는 인정한다”면서도 김 전 회장은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지 못해 배임의 범위가 인정되기 어렵다고 했다.
변호인은 공소장 내용을 지적하며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찰이 기소할 때 법원에 제출하는 건 공소장 하나여야만 하고,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것은 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변호인은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대북 관련 테마주나 주가 상승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 등까지 장황하게 기재하고 있다”며 “특히 ‘기업사냥꾼’이라고 불리는 투기세력들의 대표적 범행방식이라며 내용을 나열한 건 재판부로 하여금 피고인에 대한 불리한 예단을 갖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변호인 측은 대북송금과 이 전 부지사에 대한 뇌물 등에 대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변호인은 “현재 피고인은 계속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변호인 접견도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재판장에선 ‘재판 지연이 우려된다’며 구체적 입장을 밝혀달라는 검찰 측과 어렵다는 변호인 측의 입장이 엇갈리며 큰 목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9년 북한에 800만 달러를 전달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를 받는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이 전 부지사의 요청으로 경기도를 대신해 북한에 800만 달러를 보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이중 300만 달러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방북을 위한 비용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또 이 전 부지사에게 쌍방울그룹 법인카드와 차량 등 3억여 원 규모 뇌물 등을 준 혐의도 받는다.
이날 김 전 회장은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회사의 수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압수수색이 됐다”며 “(함께 기소된)양선길과 김 모 씨(전 재경총괄본부장)는 각각 사촌형, 매제 관계로 모두 제 지시를 받고 일한 것이다. 이런 부분을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판은 매주 금요일 이뤄질 예정이다. 다음달 2일 진행될 재판에선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