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한 대학교수는 작년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일반 국민 중에 무작위 선정된 배심원들이 1심 재판부에 유무죄 의견을 주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내려진 결론이었다. 또 2021년에는 헤어진 연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강간은 무죄이고 협박만 유죄라는 판결을 받은 일도 있었다.

한 법조인은 “국민참여재판에서 특히 성범죄 무죄율이 매우 높게 나오면서 일부 성범죄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5년(2018~2022년)간 국민참여재판(1심)에서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9%로 전체의 5분의 1에 가깝다. 또 작년 성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선고 비율은 52.9%였다. 이 비율은 2018년(43.3%), 2019년(28.6%), 2020년(47.8%), 2021년(25%) 등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같은 기간 주요 성범죄(형법상 강간·추행 및 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에 대한 1심 무죄 선고 비율(평균 3.2%)에 비하면 최대 15배에 가깝다.

그래픽=양인성

국민참여재판에서 ‘성범죄 무죄 선고 비율’은 다른 강력 범죄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다. 작년 국민참여재판에서 살인이나 강도는 무죄 선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상해(傷害)에 대한 무죄 선고 비율도 3.5%에 그쳤다. 한 법조인은 “성범죄 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들의 무죄 평결과 판사 판결의 일치 비율이 90%가 넘는 걸로 안다”며 “그 결과 무죄율이 50%가 넘는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성범죄 피해자가 반대하더라도 국민참여재판이 이뤄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참여재판법에 ‘성폭력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지난 2016년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피고인들이 ‘재판 지연’을 위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남 창원 ‘자주통일 민중전위’와 제주 ‘ㅎㄱㅎ’ 사건, 수원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 전북 전주 ‘시민 단체 대표’ 사건 등 최근 기소된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이 이미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거나 신청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내리면 항고, 재항고를 하면서 재판 진행을 늦추고 있다.

공안 사건을 담당하는 한 검사는 “국가보안법 사건은 외부에 공개 불가능한 증거도 많고 사안도 복잡해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피고인들이 의도적으로 재판을 끌려고 신청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참여재판 신청 절차로 재판이 멈춘 기간도 구속 기한에 포함되기 때문에 법원이 신청을 받아주지 않더라도 구속 기한 만료로 풀려난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도입 16년째를 맞은 국민참여재판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참여재판은 도입 첫해인 2008년 64건이 실시됐고 이후 해마다 늘어 2013년 345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특히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96건), 2021년(84건), 2022년(92건) 등 연속 3년 100건 미만에 그쳤다. 한 판사는 “생업에 종사하는 배심원들을 여러 번 부르기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 조사, 증인 신문, 배심원 평의 등을 하루 또는 이틀 만에 마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깊이 있는 심리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

국민참여재판은 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재판 1심에 참여해 유무죄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제도이다. 다만 법관이 배심원 의견대로 판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는 국민의 상식을 반영해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는 취지로 지난 2008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