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북한 김여정 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위헌(違憲) 결정을 내렸다. 탈북민 단체가 지난 2020년 말 헌법 소원을 제기한지 약 2년 9개월만에 나온 결정이다.
헌재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등에 대한 선고 기일을 열고 재판관 위헌 7 대 합헌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헌재는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했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대북 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조항이 신설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이다. 발단은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2020년 4~6월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북 전단 50만장을 북한 상공으로 살포한 것이다. 그러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쓰레기들의 광대놀음(대북 전단 살포)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는 담화를 발표했고,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불과 4시간 만에 ‘대북 전단 금지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통일부는 43일 만에 자유북한운동연합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대북 전단 살포가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신체에 위험을 초래하고 남북 관계에 긴장 상황을 조성해 공익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이날 위헌을 결정한 재판관 7명은 모두 해당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봤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있어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상 원칙이다. 재판관 7명은 “심판대상조항은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면서 미수범도 처벌하고, 징역형까지 두고 있는데 이는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행사”라며 “살포를 금지·처벌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제지하는 등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이 초래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므로,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라며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다만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책임을 묻는게 옳은지’를 판단하는 책임주의 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는 다르게 판단했다.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 등 4명은 국민 생명에 발생할 수 있는 위해·위험은 제3 자인 북한에 의해 발생하는데, 대북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그 책임을 전단 살포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반면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 등 3명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행위와 북한의 도발은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행위로 인한 결과에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주의원칙 위배는 아니라고 봤다.
반면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전단 등 살포’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금지할 뿐, 표현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가하고 있지 않다”라며 “이는 ‘전단 등 살포’라는 표현 방법에 대한 제한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헌재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표현의 내용을 제한하는 법률에 대하여 위헌 여부를 심사할 때는 더 엄격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선례의 입장에 기초한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라는 점과 그 보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