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사망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당시 24세)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이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김병숙 전 사장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7일 확정했다.
김씨는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지난 2018년 12월 11일 새벽 석탄운송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로 홀로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0년 8월 원·하청 기업 법인과 사장 등 임직원 14명에게 사망 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이 인정된다며 기소했다.
1·2심은 모두 김병숙 전 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표이사는 안전보건 방침을 설정하고 승인하는 역할에 그칠 뿐, 작업 현장의 구체적 안전 점검과 예방조치 책임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인 태안발전본부장에게 있다는 이유였다.
2심 법원은 “피고인이 컨베이어 벨트 설비의 현황이나 운전원들 작업방식의 위험성에 관해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태안발전본부 내 개별적인 설비에 등에 대하여까지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위험 예방 조치 등을 이행할 구체적, 직접적 주의의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서부발전과 김 전 대표 등에게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관련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이를 확정했다.
김 전 사장과 함께 기소된 권모 전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장과 서부발전 법인도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김씨 사망의 원인이 된 석탄 취급설비와 위탁용역관리 관련 업무는 태안발전본부의 기술지원처가 담당하기 때문에 직접적·구체적 주의 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밖에 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기술지원처장, 연소기술부·석탄설비부 책임자들, 백남호 전 발전기술 사장, 태안사업소장 등 10명과 발전기술 법인은 이날 유죄가 확정돼 금고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관련자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없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 2018년 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이 통과됐고 2020년 1월부터 시행됐다. 이어 이보다도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작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김용균법은 근로자를 사망하게 한 경우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사망 사고의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3년 이상 징역이나 5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그러나 두 법 모두 소급되지 않았고, 따라서 이번 재판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유족 측은 즉각 반발했다. 김씨의 어머니 김미숙(53) 김용균 재단 이사장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사장이 현장을 잘 몰랐다면 그만큼 안전에 관심이 없었단 증거 아니냐”라며 “기업주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안전 보장 없이 죽여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다. 김씨는 눈물을 흘리며 대법원 쪽을 향해 “용균아, 미안하다”, “대법원은 당장 용균이에게 잘못했음을 인정하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