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그동안 재판 지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왔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개선을 추진하는 가운데 일부 판사들이 이에 반대하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뉴스1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조 대법원장은 이날 전국 법원장 회의를 주재하고 재판 지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김명수 사법부’ 때 새로 도입된 인사 제도인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개선하는 방안도 안건에 올라와 있다고 한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각 지방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거쳐 추천한 후보 중에서 법원장을 임명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한 이 제도가 법원 내 ‘인기 투표’로 전락하면서 판사들이 제때 재판을 하고 판결문을 쓰도록 독려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법원장이 자기를 뽑아준 판사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재판 지체 현상을 심화한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언급돼왔다. 조 대법원장도 사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재판 지체’ 현상을 지목하고, “법원이 사건 처리를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에 일부 판사들이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에 반대하는 취지의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남인수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법원장 후보 추천제와 임명제를 시행 중인 법원들의 사건처리율을 비교하면서 “분석 수치를 보면 적어도 추천제로 재판 지연이 초래됐다는 주장엔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는 글을 올렸다. 남 부장판사는 “사건처리 기간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선행돼야 적절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재판 지연의 주요 원인인지 확실치 않은데도 개선에 나서는 것은 섣부르다는 주장이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도 다음날 내부망에 비슷한 취지의 글을 올렸다. 류 판사는 “법원장 추천제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디어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법원장 추천제가 원인인지도 불분명한 ‘재판 지연’ 해결의 기치 아래 사법 관료화의 심화, 지법 판사들과 고법 판사들 사이의 지위 격차 발생, 지법 판사들의 자긍심 저하, 경험 없는 판사의 지방법원장 보임 등의 문제점을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제도가 대안으로 주장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남 부장판사와 류 판사가 올린 글에 대해 판사들의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남 부장판사가 과거 법관대표회의가 출범할 때부터 회의에 적극 참여하며 ‘김명수 사법부’가 현 제도를 만드는데 기여한 인물이란 평도 나온다. 그는 과거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에 불만을 제기한 판사 명단을 따로 관리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법원 내부 의견과 상관없이 “검찰의 직접 수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판사들이 해당 법원의 법원장을 직접 투표해 뽑아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류 판사는 법원 내 진보 성향 법관 모임으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다음 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오늘까지의 지난 6~7개월은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이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류 판사는 당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가입한 판사들 중에도 핵심으로 꼽히는 ‘인권과 사법 제도 소모임(인사모)’ 소속으로 활동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