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세입자)의 ‘계약 갱신 청구’를 거절하려면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증명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26일 나왔다. 이번 판결은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를 둘러싼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임차인의 ‘계약 갱신 청구권’ 행사가 집주인의 재산권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는데,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하려 할 경우에도 지나친 증명 책임을 지게 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서울 서초구에 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이 아파트를 B씨 부부에게 2019년 3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보증금 6억3000만원에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다. A씨는 계약 만료를 석 달쯤 앞둔 2020년 12월 “가족 모두가 해당 아파트에 들어가 살 계획”이라며 B씨 부부에게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했다.

이에 B씨 부부가 계약 갱신을 요구했지만 A씨는 “집을 비워 달라”며 B씨 부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A씨는 처음에는 본인 가족이 해당 아파트에 거주할 것이라고 했다가 부모가 실제 거주할 거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래픽=김성규

1심과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 과정에서 세입자 측은 “A씨가 누가 실제 거주하려는지에 대해 말을 바꿨다”며 “계약 갱신을 부당하게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실제 거주 주체가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계약 갱신 거절이 돌연 부적법하게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그와 같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집주인이 실제 거주를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 갱신 청구를 거절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한 증명 책임은 집주인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집주인이 단순히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서 실제 거주 의사가 곧바로 인정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은 “집주인이 실제 거주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실제 거주 의사와 모순되는 언동 유무, 이런 언동이 계약 갱신에 대한 임차인의 정당한 신뢰를 훼손할 여지가 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소송 과정에서 실거주자가 바뀐 이유에 대해 A씨가 합리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대해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전세 준 50대 남성은 “실제 거주를 위해 임차인에게 계약 갱신을 거절할 계획”이라며 “실거주 의사를 임차인이 못 믿겠다고 하면 어떻게 증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부동산 전문인 한 변호사는 “이번에 대법원이 기준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실거주 의사가 증명됐는지를 놓고 집주인과 임차인이 소송을 벌이는 일이 빈번하게 생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