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귀찮은 작업이겠지만 원고가 해줘야 해요. 방송별로 하나씩 분석하고 특정해야 합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담동 술자리’ 의혹 보도의 피해자 이미키(본명 이보경)씨가 강진구 전 더탐사 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이 사건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 송승우 부장판사는 23일 피해자인 원고 이씨 측에 앞으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을 말했다. 한참 뒤에 이뤄질 손해 입증을 위한 기초 자료부터 내달라는 것이다. 작년 6월에 낸 소송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보자가 첼리스트와 나눈 통화 내용. /유튜브 '시민언론 더탐사'

2022년 10월 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발언으로 시작된 ‘청담동 술자리’ 의혹.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당시 국회 법사위 국감장에서 청담동 술자리에 있었다고 주장한 첼리스트와 전 남자친구의 통화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당시 법무부 장관)이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0여 명과 함께 그 술자리에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밤 더탐사는 유튜브를 통해 해당 방송을 전파했고, 의혹은 삽시간에 정치권을 술렁이게 했다.

더탐사는 보도의 사실 여부로 공방이 이어지자 이후 청담동 술자리 장소라며 이미키씨가 운영하는 ‘논현동’ 음악 카페를 지목했다. 보도에선 ‘가수 이모씨가 운영하는 술집’이라고 언급했다. 카페 모습도 모자이크 처리해 등장시켰다. 더탐사는 ‘청담동 게이트’ 장소라며 여러차례 이런 보도를 했다. 이후 야권 성향의 유튜버들이 카페로 몰려들었다. 언론사 기자들도 카페에 드나드는 손님을 취재한다며 현장에 왔다. 이씨는 게이트의 장소 제공자이자 협력자로 온라인상에서 공격 받았다.

이씨는 입장문을 내고 “말도 안되는 더탐사 보도로 인해 모든 것이 망가졌다. 제가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과 음악을 함께 나누던 곳은 어느새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김앤장 변호사들 수십명과 부적절한 회동을 한 장소로 둔갑됐다”며 “제가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또 설명해도 더탐사는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시민들에게 가로막힌 강진구 전 더탐사 대표의 모습. /유튜브 채널 ‘황경구 시사파이터’

이씨 말대로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격랑에 휩쓸린 이씨는 피해가 계속되자 작년 6월 결국 강 전 대표와 더탐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5억5000만원 배상과 함께 해당 방송 동영상을 모두 삭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재판에서 “방송마다 가담한 피고는 누구인지, 구체적인 재산 손해가 얼마인지, 정신적 피해로 인한 위자료는 얼마인지 모두 정리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탐사)방송에서의 구체적인 불법행위 내용, 명예훼손과 모욕에 해당하는 발언이 무엇인지도 특정해야 한다”고 했다.

작년 11월 이 사건은 재판에 앞서 조정 절차를 밟기도 했다. 그러나 ‘보도의 진실성을 다투고 싶다’는 강 전 대표의 입장에 따라 조정이 결렬되면서 이날 정식 재판이 열리게 됐다. 당시 강 전 대표는 “기자 입장에서 보도 진실성 여부가 가려지지도 않았는데 영상을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굴욕이고 조정관도 인정하신 것 같다”고 했다.

강 전 대표 측은 이날 재판에서도 “첼리스트와 그 외 제보를 준 사람들을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했다. 의혹의 내용이 허위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들을 불러 신문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재판부는 “신청할 경우 증인으로 채택하겠지만 이들이 소환될 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앞서 한 위원장의 고소로 이뤄진 경찰 수사에서 더탐사 보도는 허위로 판명됐다. 술자리에 있었다던 첼리스트가 경찰 조사에서 “전 남자 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당시 첼리스트와 함께 있었던 인물의 동선도 확인했다. 술자리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김앤장 변호사가 있었다는 건 모두 가짜였다. 강 전 대표와 김 의원은 모두 검찰에 송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