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금을 받지 못한 경우 형사고소와 민사소송 중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
질문을 채팅창에 입력하자 20초도 걸리지 않아 답변이 올라왔다.
‘사기죄 등 범죄가 아니면 민사소송을 제기해 대여금 반환 청구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내용의 문장들이었다.
곧바로 ‘이 사람이 원래 돈을 갚지 않을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이 상황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묻자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경찰에 신고해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이는 국내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네이버 클라우드, 리걸테크 업체인 넥서스AI와 함께 20일 출시한 인공지능(AI) 기반 법률 상담 챗봇 서비스 시연의 한 장면이다.
대륙아주는 이날 서울 강남구 본사 대회의실에서 ‘AI 대륙아주’ 시연회를 열고 서비스를 출시했다. 리걸테크 업체가 아닌 국내 대형로펌이 직접 AI로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업계에서 처음있는 일이다. AI 대륙아주는 넥서스AI가 네이버의 AI인 ‘하이퍼클로버X’를 활용해 개발했고, 대륙아주가 대중을 상대로 챗봇 형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스마트폰과 PC에서 접속하면 실시간 무료 법률 상담이 가능하다.
대륙아주 소속 변호사들은 로펌이 쌓아온 각종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직접 1만여개의 질문과 모범답안을 만들어 AI를 학습시켰다고 한다. 이 서비스는 출시 전 최종 테스트에서 질문 100개를 하면 올바른 답변 88개를 답변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 가지 사안에 대해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5개까지 연속 질문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시연회에서 이 AI 법률 서비스는 ‘음주운전 재범일 경우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등 각종 질문에도 무난히 답변을 해냈다.
이 서비스는 토종 기업인 네이버의 AI를 채택해 한국어 기반 검색에 장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돈을 빌려간 친구가 갑자기 잠수를 탔는데 소송과 가압류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문자 그대로 ‘잠수’가 아닌 ‘잠적’의 의미를 이해하고 답을 내놨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은어’나 ‘약어’(줄임말)를 채팅창에 입력해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대륙아주는 AI 법률 무료 상담 서비스를 통한 구체적 사업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장기적으로 다른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들의 이용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사업 모델을 계획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형로펌의 AI 법률 상담 서비스 출시가 과거 ‘로톡 사태’와 같은 변호사단체와의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8일 대륙아주 측에 ‘24시간 무료 AI 법률 상담의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 소지’ ‘서비스 운영 시 변호사의 답변 직접 검수 여부’ 등을 소명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변협이 이 서비스의 변호사법 위반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규철 대륙아주 대표변호사는 “변호사법 위반은 아니라는 내부 검토를 마쳤다”면서 “변협에도 소명자료를 제출하고 계속 함께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