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5일 스토킹 범죄에 대한 권고 형량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심의했다. 지난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됐지만 다른 범죄보다 실형(實刑) 선고 비율이 낮아 재범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 등에 따른 것이다.
◇“스토킹, 실형 비율 10%포인트 낮아”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작년 11월까지 스토킹 범죄로 정식 기소돼 1심 판결이 선고된 사람은 총 3406명이었다. 이 가운데 징역 등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638명(18.7%)으로 나타났다. 실형 선고 비율이 형사 1심 재판 전체(29.2%·2022년 기준)보다 10.5%포인트 낮은 것이다.
반면 스토킹 범죄로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1110명(32.6%)으로 집계됐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도 949명(27.9%)에 이른다. 나머지는 사실상 처벌을 받지 않는 선고유예, 공소기각, 무죄 등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 스토킹 범죄를 저질렀지만 약식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이들도 3296명으로 나타났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최대 징역 3년(흉기 휴대 시 최대 징역 5년)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대다수는 수감되지 않는 것이다.
법원은 스토킹 범죄자가 과거 주거 침입 등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거나, 다른 범죄로 징역형 등을 선고받은 경우에 실형을 선고하는 경향이 있다. A씨는 2018년부터 대형 마트에 근무하는 피해자 B씨에게 “마음에 든다. 같이 술 한잔 하자”며 접근했다. 이후 A씨는 2022년 사기죄로 복역하던 중에도 만남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A씨는 출소 후에도 마트를 수차례 찾아와 “B씨가 어디 있느냐, 불러달라”며 난동을 피웠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하면서 “다른 범죄를 저지른 상태에서 자숙하지 않고 스토킹 범행을 저질러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그러나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도 많다. C씨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 11일간 150여 차례 전화, 문자와 집 방문을 했다. 피해자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락해 “불 켜놓고 있냐” “불 껐네”라며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알렸다. 피해자의 집 문을 1시간 동안 두드리며 위협하기도 했다. 법원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해 오던 과정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여 다소 참작할 사정이 있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D씨는 2022년 8~9월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스토킹을 하다가 피해자의 근무지로 찾아갔다. D씨는 피해자에게 “죽여버린다” “내가 한번 보여줄게”라고 말한 뒤 자신의 차량에서 32㎝ 길이의 식칼을 꺼내 왔다. 다른 사람이 D씨를 말렸지만, 그는 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법원은 D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상당 기간 구속돼 자성의 시간을 가진 점 등을 참작했다”고 했다.
◇양형위 “권고 형량 높일 것”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2022년 9월 발생한 이후 스토킹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양형위원회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권고 형량 기준안을 지난 1월 마련했다. 흉기를 휴대한 스토킹 범죄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벌금형을 선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형을 가중하면 법정 상한형인 징역 5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스토킹 범죄로 피해자나 그 가족이 이사를 가야 하거나 학업과 생계에 심각한 피해가 생긴 경우에는 형을 가중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단순히 스토킹 자체를 즐기려고 범행을 저지른 경우에도 가중 처벌되게 했다.
양형위는 이날 권고 형량 기준안에 대한 심의를 마치고 그 결과를 26일 공개할 예정이다. 한 법조인은 “스토킹 범죄자는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하면서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크다”면서 “1차 범죄를 엄벌하지 않으면 추가 범죄, 모방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