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디지털성범죄 TF 팀장을 지낸 서지현 전 검사는 “이미 디지털성범죄는 지옥문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2018년 서 전 검사가 과거 상관의 성추행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22만여 명이 참여 중인 텔레그램 채널에서 딥페이크(허위 합성 사진·영상) 성범죄물이 확산된 사건이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대학생에서부터 초·중·고교생까지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미 3년 전 태스크포스(TF)를 꾸렸었다. 2021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법무부의 디지털성범죄 TF 팀장을 지낸 서지현 전 검사에게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최근 수사 중인 텔레그램 성 착취물 채팅방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

“분노와 절망… 이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수년 전부터 ‘이미 디지털성범죄의 지옥문이 열려 있다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말했는데도 국가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일각에선 22만여 명은 과장됐다고도 하고,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22만명이면 안 되고, 2만2000명, 2200명, 220명이면 괜찮은 건가.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가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문제는 가정과 학교, 군대, 직장, 거리…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범죄 대상이 같은 반 여학생, 엄마, 누나, 여동생, 동료 군인 등 가장 친밀하고 신뢰해야 할 이들이었다는 것이 너무 기가 막힌다. ‘성범죄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라’는 이 당연한 주장은 젠더 문제도, 정치 문제도 아니다. 그 어떤 범죄자 아닌 남성이 범죄자를 처벌하자는 데 반대할까. 남성들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 정녕 누구인지 묻고 싶다.”

그래픽=송윤혜

-2021~2022년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TF 팀장을 지냈다. 당시에도 딥페이크 문제가 터질 조짐이 있었나.

“조짐 정도가 아니라 이미 ‘지옥’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TF에서 2021년 10월 ‘n번방 그 후 1년’이라는 세미나를 열었었는데, n번방 사건 후 1년 만에 다크웹(악의적 목적의 비밀 사이트) 이용자가 조주빈 검거 이전 수준으로 증가해 있었고, 피해자의 신상 정보 노출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 디지털성범죄의 주요 유통 채널을 설명하면서, 대책을 촉구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디지털성범죄를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디지털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증거 보전과 수사, 차단과 삭제다. 지금도 많은 딥페이크 단톡방이 폭파되고 있다고 한다. 수사기관은 피해 영상물을 발견하는 즉시 전기통신 사업자에게 그 영상을 보전하라고 해야 한다. 그게 바로 ‘피해 영상물 보전 명령’이다. 또 피해 확산을 막으려면 ‘응급조치’를 도입해야 한다. 경찰이 디지털성범죄 발견 즉시 증거를 확보하고, 삭제·차단을 요청하고, 범죄 행위를 제지하고, 처벌을 경고하고, 피해자를 보호 조치하는 게 바로 응급조치다. 이런 걸 빨리 입법해야 하는 것이다.”

입법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뀐 후인 2022년 5월 TF는 활동 성과를 담은 백서를 발간하고 해산됐고, 그는 원대 복귀 발령을 받고 검찰을 떠났다. 법무부는 “TF 해산 후에도 부서별로 역할을 분담해 대응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못 내놓고 있다.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디지털성범죄는 어떻게 다뤄지고 있나.

“2019년 구하라 사건 때 지적된 문제인데, 아직도 법정에서는 성범죄 피해 영상물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방영된다. 증거 조사가 반드시 비공개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그 자체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공포일까. TF 권고안에는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증거 조사를 반드시 비공개로 하고, 영상물을 판사, 검사, 변호인별 개별 모니터로 재생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양형을 규정하는 형법 51조에는 참작 조건이 ‘피해자에 대한 관계’뿐이다. 피해자의 고통이 반영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TF는 ‘피해자의 연령, 피해의 결과 및 정도, 피해 회복 여부, 피해자의 처벌 및 양형에 관한 의견’을 추가하자고 권고했다. 당시 제안한 법과 제도들만 만들어졌어도 피해자들 고통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텔레그램을 비롯해 유튜브, 인스타 등 플랫폼 기업들이 유해 콘텐츠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경찰은 텔레그램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해왔다. 이번에 프랑스 경찰은 텔레그램 창업자 두로프를 아동 성 착취물 유포 등 혐의로 긴급체포하지 않았나. 브라질은 가짜 뉴스 삭제에 협조하지 않는 텔레그램 앱을 앱스토어에서 아예 없앴다. 그 어떤 자유도 무한정·무제한의 권리가 아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받는 것이다.

수사에 협조하고 영상물을 삭제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텔레그램 앱을) 삭제하라는 게 과도한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물 25건을 삭제했다고 하는데 일단은 다행이다. 프랑스 경찰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도 핑계를 멈추고 신속하게 수사하고 영상물을 차단·삭제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서지현 전 검사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33기로 수료했다. 2004년 검사로 임관해 인천지검, 서울북부지검 등에서 근무했다. 2018년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이 과거 검찰 선배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해 이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