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용자 21만751명이 범죄·폭력·음란 게임의 유통을 금지하는 게임산업법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8일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역대 헌법소원 사건 중 청구인이 가장 많다.
이 사건 이전 청구인 최다 헌법소원은 200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중심이 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협상과 고시(告示)는 무효”라며 낸 것인데, 당시 9만5988명이 이름을 올렸다.
구독자 약 92만명의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 운영자 김성회씨와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 게이머들은 이날 오전 헌법재판소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청구인들은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것’에 해당하는 게임물을 제작·반입하는 경우 형사처벌 할 수 있다는 게임산업법 제32조 2항 3호 조항이 헌법이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해당 조항 등을 근거로 게임물의 국내 유통을 심의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조항이 게임 이용자의 행복추구권(문화향유권),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표현·예술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또 조항이 헌법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범죄·폭력·음란 등의 묘사가 어느 수위에 이르러야 지나치다고 볼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조항의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날 “오징어게임이라는 영상 콘텐츠는 세계적인 K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오징어게임과 유사한 형태의 게임물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며 금지되는 게 현실”이라며 “한국의 영화, 웹툰, 웹소설, 음반 등 콘텐츠 중 게임만 홀로 악마화 돼 있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 중 오직 게임에만 남아있는 이 법으로 인해 게임업계인들의 창작의 자유, 게이머들의 문화향유권이 제한당하고 있다”며 “한국 게이머들은 세상의 모든 폭력적, 선정적인 게임들을 무분별하게 남용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슷하게 취급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범죄, 폭력, 음란을 지나치게 묘사 했다는 기준이 불분명해 게임 심의자가 누군지에 따라 해석이 바뀔 수 있고, 영화, 드라마, 웹툰 등에 없는 유독 엄격한 잣대가 게임에만 있다”고 했다.
이번 청구는 김씨가 지난달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임산업법에 대한 문제점을 공론화하고자 헌법소원 청구인 모집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영상 업로드 이후 23일간 총 21만751명이 헌법소원 청구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법조계에서도 해당 조항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의 ‘게임물 규제법제에 관한 헌법적 검토’ 보고서는 “해당 조항을 통해 범죄 폭력 음란 등의 묘사가 어느 수위에 이르러야 지나치다고 할 것인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며 “규정이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보다 상세한 규율을 통해 예측가능성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하나의 사안에 21만명 이상이 헌법소원을 낸 건 이례적”이라며 “청구인이 많다는 건 그만큼 기본권 침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상징”이라고 했다.
다만, 헌재가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할 경우 지나치게 자극적인 게임이 유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과 교수는 “이용자가 콘텐츠에 직접 개입하고 상호작용하는 게임의 특성상 너무 높은 수위의 게임 콘텐츠가 등장하면 뜻밖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며 “헌법소원의 취지에 공감하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