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형사공탁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해야 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이상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일 대법원 1층 대강당에서 열린 '피해자와 양형'을 주제로 제13차 심포지엄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는 전날 ‘피해자와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형사공탁을 유리한 양형 사유로 반영해선 안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합의금 명목으로 법원에 일정 금액을 맡기는 것으로, 피해자의 사생활 보호·피해 회복 등을 위해 도입됐다. 피해자는 공탁금을 수령해 범죄 피해 회복 등에 쓸 수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감형만을 목적으로 피해자의 뜻과 상관없이 몰래 ‘기습 공탁’을 하거나, 감형을 받은 뒤 공탁금을 회수해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비판이 이어져왔다. 지금까지 법원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더라도, 공탁이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를 유리한 양형 요소로 종종 참작해왔다.

이에 조정민 인천지법 부천지원 부장판사는 “공탁금이 수령되거나 수령의사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탁이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피해회복을 위하여 노력’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이 경우 피해자의 부정적 의견을 기재하고 양형에 참작하지 않되, 심리 결과 참작할 사정들이 밝혀진다면 제한적으로 참작하는 형태를 원칙으로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수원지방검찰청의 김자은 검사도 “피해자가 형사공탁금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명시한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사유로 참작해선 안된다”며 “피해자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돈으로 형량을 거래’라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범죄 피해자에게 국가가 지원금을 주는 ‘범죄피해자 구조금’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범죄피해자 구조금이란 범죄로 사망·장해·중상해를 입은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국가가 구조금을 지급한 뒤 가해자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하는 제도다.

최준혁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피해자에게 범죄 구조금을 지급한 후 구상권을 행사해 가해자가 채무를 변제하면, 법원이 이를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참작해 유리한 양형 참작 사유로 인정하는 판결이 피해자와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며 “이를 양형기준에서 정한 피해 회복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형웅 의정부지법 판사도 “피해자의 심리적인 요소가 결여된 채 피해만 금전으로 변상 되었다는 사정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하는 것은 민·형사가 미분화된 전근대적 면모”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