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8일 공개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힌 것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누구든 고소·고발을 당하면 자동적으로 입건되고 법적으로 피의자 신분이 되지만, 굳이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라고 공개 발표한 것은 검찰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특히 박세현 특별수사본부장이 이번 사태를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서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규정한 것도 주목된다. 그가 사용한 ‘국헌 문란’ ‘폭동’ 등의 어휘는 형법에 규정된 내란죄의 필수 구성 요건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 내용을 법무부에 일절 보고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 역시 현 정부와 선을 긋고 독립적으로 수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자기의 ‘푸들’이란 소리를 들었던 검찰이 ‘사냥개’로 돌변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는 검찰뿐 아니라 경찰, 공수처도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수사기관 3곳이 모두 달려든 것이다. 검찰은 특수본을 구성한 당일인 지난 6일 경찰에 같은 사건이니 합동 수사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경찰 특별수사단은 “수사의 신뢰성과 공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령상 내란죄는 경찰의 관할인 만큼, 경찰이 수사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와 직접 연결된 범죄는 검찰도 수사할 수 있어 내란죄도 수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특수단 수사 인력도 기존 120명에서 150명으로 늘렸다.
두 기관이 중복해서 하다 보니 사람은 검찰이 체포하고, 증거는 경찰이 확보한 경우도 생겼다. 검찰은 8일 새벽 이 사건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장관이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하자 조사 도중 긴급체포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을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한 뒤 이날 오후 5시쯤 다시 소환해 조사했다. 이르면 9일 구속영장도 청구할 방침이다.
같은 날 경찰은 김 전 장관의 공관·집무실·자택 등을 9시간여 동안 압수 수색했다. 이를 통해 휴대전화, PC, 노트북 등 압수물 18점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당시 사용한 휴대전화가 포함됐는지를 확인 중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수처는 이날 오후 검찰과 경찰에 비상계엄 사건을 자신들에게 이첩하라고 요청했다. 공수처는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해 신속성과 공정성 등을 위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이첩을 요청을 받은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돼 있는 공수처법을 근거로 들었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직후부터 오동운 공수처장 직속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법리 검토와 강제 수사 착수 여부 등을 검토해왔다”고 했다.
공수처는 지난 6일 김 전 장관 등 주요 피의자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 등을 청구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수사의 효율 등을 고려해 각 수사기관 간 협의를 거쳐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해 달라”며 기각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법원이 영장은 기각했지만, 김 전 장관 등의 내란 혐의에 대해선 공수처에 수사권이 있다고 인정했다”고 했다.
검경은 공수처의 이첩 요구에 대해 내부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순순히 수사권을 넘겨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양측 모두 나름대로 수사 착수의 법리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