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에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준 쪽지 속 비상입법기구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느냐”는 질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4시간 50분의 심리 동안 최 부장판사가 윤 대통령에게 한 유일한 질문이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쪽지를 내가 쓴 것인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쓴 것인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고, 메모의 취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상입법기구는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최 대행에게 건넨 쪽지에 언급된다. ‘국회 관련 자금 완전 차단,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는 게 최 대행의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이를 대체할 방안으로 비상입법기구를 고안한 것으로 의심한다.
한편 윤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총 45분 간 직접 발언했다. 먼저 공수처와 변호인단의 PPT가 끝난 뒤인 오후 4시 35분쯤 발언권을 얻어 40분 간 비상계엄 선포 배경 등을 직접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별도의 원고 없이 평소처럼 거침없이 발언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자신에게 국회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만 국회에 투입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는 않았다. 윤 대통령은 오후 6시 50분 심사가 끝나기 직전에도 5분간 최종 진술을 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출동했던 곽종근 특수전사령관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에게 전화해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라도 들어가 의원들을 다 끄집어내라”고 지시하는 등 국회의 기능 행사를 마비시키려 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고 한다. 차정현 부장검사 등은 윤 대통령 전화를 사령관 옆에서 함께 듣거나, 사령관에게 관련 지시를 전달받았다는 현장 지휘관 진술을 다수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윤 대통령은 “사령관의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내가 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하겠느냐”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 측은 ‘비상계엄 이후 윤 대통령의 발언 등에 비춰봤을 때 탄핵심판이 기각되면 윤 대통령이 다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재범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도 구속 필요성을 설명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2차, 3차 계엄을 하려고 했으면 1차 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경고성 계엄”이라고 반박했다.
이 밖에도 공수처 측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전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휴대전화를 바꾼 점,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윤 대통령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다른 공관으로 이동한 정황이 포착된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개인 휴대전화를 없앤 것은 과거 명태균씨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미 밝힌 일이고 비상계엄과 무관하다”는 취지로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윤 대통령은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대통령 공관에 그대로 머물렀다며 현직 대통령 신분을 감안했을 때 도주는 애당초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 부장판사는19일 오전 2시 56분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