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의 반도체 세정 장비 제조 기술을 도용해 만든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려고 한 전 삼성전자 엔지니어 등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 박경택)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등 혐의로 중국계 A회사 대표 B(55)씨와 설계팀장 C(43)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또 A회사 등 법인 3곳과 회사 직원 등 관련자 9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B씨 등은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출신 퇴사자로부터 확보한 세정장비 도면과 공정 레시피 등을 활용해 장비를 제작해 중국에 수출하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 등은 세정장비 챔버부(장비 내에 구성된 세정 작업이 실제로 진행되는 부분) 도면을 구한 다음, 이를 기초로 새로운 수출용 장비 챔버부를 제작하고 또 세정장비 이송로봇 도면을 도용해 새 로봇을 설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세정공정 레시피(장비 구동 세부 절차와 방법을 정리한 문서)를 활용해 새 레시피를 작성한 혐의도 있다.
반도체 세정기술은 공정 중 발생하는 머리카락 1만 분의 1굵기의 이물질을 정밀하게 제거하는 초고난도 핵심기술로 꼽힌다. 이는 정부에서 지정한 국가핵심기술이기도 하다.
검찰은 “삼성전자와 세메스가 30여년간 약 2188억원의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들여 개발한 이 기술을 피고인들이 유출, 부정사용했다”며 “만약 이 기술이 그대로 유출돼 동일한 품질의 설비가 대량 생산됐다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1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B씨는 지난 2018년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체에 근무한 엔지니어들을 영입해, 세정장비 관련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업체를 설립했다. 이후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직접 투자를 받기로 하고, 78억2000만원 규모 계약을 체결한 후 모든 인력과 기술을 이 중국 회사의 국내 법인사에 양도하기로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사에 영입된 엔지니어들은 각 근무 업체에서 퇴사할 무렵 불법 유출한 자료 등을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정장비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이렇게 제작된 시제품 1대가 중국으로 실제 수출됐다. 2대의 양산장비 제작 중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범행이 발각돼 중단됐다.
B씨 등은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범행을 부인했지만, 검찰은 포렌식 기법을 활용해 자료에 남겨진 ‘디지털 지문(해시값)’을 확인, 기술이 도용된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평소 수사에 대비해 가명을 사용하거나, 간판도 없이 회사를 운영하고, 도면과 레시피 등 자료를 베끼고 난 뒤에는 이를 삭제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중국에 수출된 시제품을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우연히 목격해 신고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자, 단체로 휴대전화를 교체하기도 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기술유출은 대부분 외국 기업이 고액 연봉을 내세워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 수사로 외국 기업이 직접 한국에 기술 유출 거점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며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범행이 확인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