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뉴스1

국회 측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사건에서도 사실상 형법상 ‘내란죄’를 탄핵 사유에서 철회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작년 12월 한 총리를 탄핵소추하면서 핵심 사유로 ‘윤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하고, 묵인 또는 방조했다’고 했는데, 뒤늦게 내란죄 성립 여부는 다투지 않고 헌법 위반만 따지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 측 김기윤 변호사는 “(한 총리가) 당연히 형사 처벌된다는 것을 전제로 했었는데, 사법 처벌과 관계없이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걸로 약간 수위를 낮춘 것”이라며 “윤 대통령 탄핵 사건 대리인단과는 소통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총리의 탄핵소추서에는 ‘내란 행위’라고만 돼 있고, ‘형법 87조(내란) 위반’이라고 적혀 있지는 않다. 법조계에선 “내란 공범으로 몰아 직무를 정지시켜 놓고 이제 와서 내란죄를 빼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尹 이어 韓 탄핵심판서도 “내란죄 철회”

한 총리 측은 지난달 첫 준비기일에서 “국회 측이 윤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내란죄 등 형법 위반 문제를 철회한다고 했는데, 이 재판에서도 동일하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형두 재판관이 5일 열린 두 번째 준비 기일에서 “형사상 처벌과 관계없이, 한 총리가 내란 일부 행위에 가담하거나 방조함으로써 헌법상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만 탄핵 이유로 하겠다는 입장이 맞느냐”고 묻자, 국회 측은 “맞는다”고 답했다.

앞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국회 측은 내란죄 철회를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당시에는 대통령 탄핵을 빨리 하기 위해 입증이 까다로운 형법상 내란죄를 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형법상 내란죄를 다투지 않고 헌법상 내란 행위를 판단하겠다는 것은 궤변”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우원식-한덕수-마은혁... 순서 뒤집혀

한 총리는 작년 12월 26일 ‘여야 합의’가 안 됐다며 국회가 추천한 조한창·정계선·마은혁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보류를 발표했다가 이튿날 탄핵소추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한 총리 탄핵안을 표결하며 대통령 탄핵 의결정족수(200석)가 아닌 일반 국무위원 의결정족수(151석)를 적용했고, 탄핵안은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야당 의원 192명만으로 통과됐다. 이에 국민의힘은 우 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과 탄핵안 효력 정지 가처분을 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151석 정족수로 의결한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한 총리 탄핵소추로 ‘대행의 대행’을 맡은 최상목 권한대행은 작년 말 조·정 재판관만 임명하고 마 후보자 임명은 보류했다. 그러자 우 의장은 지난달 3일 “국회의 재판관 선출권을 침해했다”며 국회 의결 없이 권한쟁의를 청구했다.

문제는 헌재가 쟁점이 서로 겹치는 세 사건을 정반대 순서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151석 의결이 잘못됐다고 결론 나면, 한 총리 탄핵심판은 자동으로 각하되고 최 권한대행 사건 자체도 없어지게 되는 것 아니냐”며 “헌재가 의결정족수 판단부터 하는 게 합리적인 순서”라고 말했다.

헌재는 가장 늦게 접수된 마 후보자 관련 사건을 서두르다가 ‘졸속 심리’ 논란을 빚자, 선고 2시간을 앞두고 선고를 연기했다. 그러나 먼저 접수된 한 총리 사건은 5일 겨우 준비 기일을 마쳤다. 19일 첫 변론 기일을 열기로 했는데, 사건 접수 54일 만이다. 재판도 격주에 한 차례씩 열 계획이어서, 증인 신문이 추가되면 선고는 다음 달에도 나오기 어려울 전망이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국정 안정을 위해선 한 총리 사건이 더 시급한데, 마 후보자 사건을 먼저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헌재가 재판관 공석을 채우기 위해 서두르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우 의장의 권한쟁의 심판은 변론 기일조차 잡지 않고 있다. 한 총리 사건의 기초가 되는 사건인 데다, 법리 해석의 문제라서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데도 헌재가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 교수는 “이 사건이야말로 서류 심사만 하고 한 차례 변론으로 종결한 뒤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