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의혹’ 사건 1·2심에서 혐의 19개에 대해 모두 무죄판단을 받았다. 이로써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재판(사실심)은 모두 끝났다. 대법원에선 사실 판단을 마친 1·2심에서 법 적용이 제대로 됐는지를 따지는 ‘법률심’이 이뤄진다.
그런데도 검찰은 7일 이 회장 등을 상고하며 “1·2심이 주요 쟁점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고 있고, 서울행정법원이 분식 회계를 인정한 판결과도 배치된다”고 했다. 사실상 대법원에서 사실관계를 다시 다투겠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검찰의 ‘기계적’ 상고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1·2심 모두 무죄가 난 사건의 사실관계를 다투려고 상고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 법조인은 “이 회장처럼 국정 농단 사건 때 파기환송심까지 네 번을 더해 일곱 번째 재판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했다.
◇“사실관계 정리돼 상고 실익 없을 듯”
검찰이 이 회장을 상고하면서 밝힌 1·2심 간 판단이 달라졌다는 부분은 2014~2015년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의혹 부분이다. 1·2심 모두 무죄로 판단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2014년 회계 처리에 대해 1심은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회계사들과 올바르게 회계 처리를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봤지만, 2심은 “콜옵션 공시 내용 등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과실을 넘어 피고인들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일부 문제는 있지만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2015년 회계 처리에 대해서도 2심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이 특정한 의도 또는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볼 때 그 판단에 이르는 근거와 과정에 최소한의 합리성이 있다”고 했다. 검찰은 7일 열린 형사상고심의위원회에서도 1심과 2심 판단이 다른 부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1·2심 판단에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불법이 없었다”는 사실관계가 확정된 만큼 상고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리 오해’를 문제 삼으면서 ‘사실 오인’을 주장하는 게 일반적인 상고 방식인데,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사실관계가 정리된 이번 사건은 대법원에서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1·2심이 삼성바이오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증거물을 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라고 본 데 대해서도 법리 오해가 있었다고 주장할 것으로 전해졌다. 고법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은 예전부터 일관되게 위법 수집 증거 요건을 엄격하게 보는 만큼 검찰의 주장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국은 1심만 무죄 나와도 항소 못 해
미국에서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 검찰이 항소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헌법에 피고인이 같은 사건으로 반복해서 재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이중 위험 금지’ 원칙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다시 기소할 수 없다’는 우리나라의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보다 넓은 개념이다. 항소는 국가(검찰)에 기소당한 피고인의 혹시 모를 억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지, 처벌을 하기 위해 기소한 검찰에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형사 전문 한 변호사는 “국내에는 항소와 상고가 너무 만연해 있다”며 “수사 및 기소 검사가 무죄 선고 시 자신의 평가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항소와 상고를 하는 검찰 내부의 관행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외부 전문가들도 상고하는 게 마땅하다고 권고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불만이 나왔다. 검찰 한 관계자는 “그동안 무죄가 선고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비판받아 왔기 때문에 수사팀 입장에선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상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1심과 달리 2심이 일정 부분 분식 회계의 문제점을 인정한 만큼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