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공개 변론에서 “계엄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단전·단수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소방청장에게 단전·단수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일곱 번째 변론 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언론사 등 특정 건물에 대한 단전·단수를 대통령으로부터 구두로라도 지시받은 적 있냐’는 대통령 측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했다. 앞서 검찰은 윤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윤 대통령이 언론사 등의 단전·단수를 지시했다고 봤는데, 이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이 전 장관은 당시 상황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종이쪽지 몇 개를 멀리서 본 게 있다. 대통령님께 (계엄을) 만류하러 들어갔을 때 1~2분 머무를 때 얼핏 보게 된 것”이라며 “쪽지 중에는 ‘소방청 단전·단수’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라고 했다. 이어 “쪽지가 어떤 맥락에서 작성되고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단전·단수를 소방이 할 경우에 국민에게 큰 안전사고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후 각종 시위나 충돌은 없는지 그런 상황 전반이 궁금해서 경찰청장과 소방청장에 차례로 전화했다”라며 “소방청장에게 전화하면서 그 쪽지가 생각나고 걱정돼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국민의 안전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꼼꼼히 챙겨달라는 취지의 당부를 한 것”이라고 했다. 소방청장과 통화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단전·단수를 지시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전 장관은 “행안부 장관에게는 소방청장을 지휘하거나 소방청장에게 지시할 권한이 전혀 없다”라며 “2년 넘게 행안부 장관 재임하면서 역대 소방청장이나 지금 청장에게 어떤 지시를 한다거나 ‘뭘 하세요. 하지 마세요’ 이런 제안을 일절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또 “만약 대통령이 단전·단수를 지시했다면 대통령 지시 사항을 2시간 넘게 뭉개고 있다가 소방청장에게 전화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시하는 형태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휘사항을 제가 전달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단전·단수가 적힌 쪽지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 “윤 대통령 집무실 원탁 위”에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소방청장’이라는 문구가 문건 제일 위쪽에 있었다고도 했다. ‘쪽지에 적힌 장소가 MBC, 여론조사꽃과 어디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냐. 한겨레, JTBC 맞느냐’는 질문에는 “맞다”고 답했다. 또 “검찰에서 (문건 관련) 이 내용을 상세히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 이날 헌재에서 한 증언은 검찰이 윤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과는 상반된 얘기다. 윤 대통령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이 전 장관에게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단수를 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줬다. 이에 이 전 장관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인 오후 11시 37분쯤 소방청장에게 “경향·한겨레·MBC·JTBC·여론조사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에서 단전, 단수 협조 요청을 하면 조치해 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앞선 경찰 조사에서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국회에서도 증언을 거부했다.
이날 이 전 장관 신문 도중 윤 대통령은 재판부에 “남은 시간 1분 50초만 (이 전 장관에게 직접) 물어도 되겠느냐”고 했지만,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대리인을 통해서 하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국무회의 주관부처 장관으로서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가 유효하냐’는 윤 대통령 측 질문에 “계엄 당일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그게 회의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 문제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의사정족수인 11명이 모일 때까지 다 기다렸고, 계엄선포를 30분 가까이 늦추면서 의사정족수가 되길 기다렸다”고 했다. 이어 “국무위원들이 찬성이니, 반대니 (얘기는) 안 했다”라며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거치게 돼 있네요’ 라고 누가 얘기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이 위헌·위법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빠르면 7일, 통상 10일 이내에 (회의록을) 만드는데, 책임자인 행안부 의정관이 참석을 못 해서 회의 참석자나 시간 발언 요지 등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무엇보다 계엄 선포 이후 비상계엄이 내란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회의록 작성하는 게 비상계엄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그 상황에서 회의록을 작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계엄 직전 열린 국무회의와 부서(副署·법령이나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문서에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함께 서명) 절차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내란’ 프레임 때문에 일부 국무위원들이 (국무회의가 아니었다고) 답변을 한 것 같다”며 “국무위원이 대통령실에서 간담회를 하거나, 놀러 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과 관련 부서는 국방부 장관, 총리, 대통령이 한다”며 “부속실 실장이 (미리) 만들고 서명을 받았다. 총리가 (부서) 작성 권한과 책임이 국방부에 있으니 국방부에서 결재 (요청이) 올라오는게 맞다고 했는데 아직 국방부가 올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어 “보안을 요하는 국법 상 행위에 대해 사전(문건 작성)을 요한다면 기안자인 실무자가 내용을 알 수 있게 된다. 사후에 전자 결재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게 “부서는 대통령의 법적 행위에 대해 하는 것이지 국무회의에 대해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직접 묻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전혀 아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