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상대로 낸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관련 권한쟁의 심판 사건의 변론을 10일 종결했다. ‘졸속 선고’ 논란으로 지난 3일 선고를 연기한 후 단 50분 변론을 더 하고 곧바로 끝낸 것이다. 재판부는 “선고 시기는 평의에서 정해지면 당사자에게 통지하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선고를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정당성 논란은 물론 국론 분열을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최 권한대행의 권한쟁의 사건 변론은 이날 오후 2시 시작된 후 50여 분 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최 권한대행 측이 신청한 추가 증인도 기각했다. 이날 한 번으로 변론 절차를 끝내면서 헌재는 ‘졸속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 법조인은 “헌재가 진보 성향의 마 후보자를 임명하고 탄핵심판에 참여시켜 하루빨리 윤 대통령을 탄핵시키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헌재는 논란이 된 핵심 증인들의 ‘검찰 조서’ 증거 능력과 관련해 “탄핵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 조서는 대부분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거들이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증거의 신빙성 문제는 재판부가 고려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2020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형사 재판에선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검찰 조서는 재판 증거로 쓸 수 없게 됐는데, 헌재는 법 개정 이전의 선례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는 조서, 증거로 쓰겠다는 헌재
최 권한대행의 권한쟁의 심판 사건 변론은 이날 50여 분이 전부였다. 최 권한대행 측과 국회 측의 변론 기회도 15분씩밖에 안 줬다. 짧은 재판이었지만 양측은 지난달 3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 없이 단독으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것이 위법한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의결 필수’ 아냐” vs “표결권 침해”
국회 측은 “국회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의사 결정의 시점과 절차, 내용을 스스로 정할 자유가 있다”며 “권한쟁의 심판 청구와 관련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본회의 의결 없이도 청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최 권한대행 측은 “국회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합의제 기관으로, 의결을 통해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면서 “국회의장이 국회의 의사를 단독으로 결정하거나 직권으로 표시할 권한은 없다”고 반박했다. 또 “우 의장이 의결 절차 없이 권한쟁의를 청구한 것은 국회의원의 헌법상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여야가 합의해 재판관 후보자를 선출했는지도 쟁점이 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작년 12월 우 의장에게 마은혁·정계선·조한창 세 재판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와 관련된 공문을 각각 보냈다. 이를 근거로 국회 측은 “여야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형두 재판관은 “공문을 보면 합의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합의가 완전히 다 안 됐다면 공문을 왜 보냈느냐”고 묻자, 최 권한대행 측은 “공문을 보낼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공백인 상태여서, 형식적인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야가 헌재소장 후보자의 야당 동의를 전제로 ‘여당 1인, 야당 1인, 나머지 1명은 추후 논의’에 합의했는데, 야당이 일방적으로 ‘여당 1인, 야당 2인’으로 추천했다”며 “권성동 원내대표가 취임한 이후 우 의장과의 면담, 우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첫 회동에서도 재판관 후보 추천 문제는 합의하지 못했다”고 했다.
◇말 뒤집었는데도 증거로 채택한 헌재
이날 헌재가 “당사자가 부인한 ‘검찰 조서’를 탄핵심판의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밝힌 것은 또 다른 논란을 키우고 있다. 현행법은 탄핵심판이 형사소송법을 준용(準用·유사한 사례에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형사 재판에서 쓸 수 없는 증거를 탄핵심판에서 쓰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헌재가 탄핵심판 선고를 앞당기기 위해 서두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김현태 특수전사령부 707단장 등 이 사건 핵심 증인들은 최근 헌재 변론에서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과 말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전 사령관은 검찰에서 “윤 대통령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했다”고 진술했는데, 헌재에선 “누군가를 체포하라거나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저지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다”고 했다. 그는 비상계엄 해제 후 윤 대통령에게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되니 계속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공소장 내용도 부인했다. 이 전 사령관은 “공소장에 있는 내용은 저의 (발언) 내용이 대부분 아니다”라고 했다.
줄곧 “윤 대통령에게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던 곽 전 사령관은 헌재에서 정형식 재판관의 추궁에 “대통령이 의원이라고 한 적은 없다. ‘인원’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김 단장도 앞서 “곽 전 사령관이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으나, 최근 헌재 증인 신문에선 “(곽 전 사령관 지시에) ‘국회의원’ ‘끌어내라’는 단어는 없었다”고 했다.
2020년 개정 형사소송법은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한 진술은 법정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검찰의 강압 수사 등을 우려한 인권 보호 조치다. 하지만 헌재는 “변호인 참여하에 본인이 서명했다”며 이들의 검찰 진술을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천재현 공보관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검찰 진술을 채택한 전례가 있고, 헌재 심판정 증언과 검찰 진술 중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는 재판부가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은 “헌재는 증언이 아닌 조서로 재판을 하겠다며 과거로의 퇴행을 고집하고 있다”며 “헌재가 법치를 무너뜨리고 헌법의 탈을 쓴 독재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의 경우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준용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헌재는 “헌법 재판은 형사 재판과 다르다”며 “형소법 준용은 헌재 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내란 행위에 대한 판단은 형법적 판단에 따라 엄격한 증거 법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