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재판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이 “재판부를 바꿔달라”며 낸 법관 기피신청에 대해 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린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각하 결정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소송을 끝내는 것을 말한다. 법원 정기 인사가 단행되면서 해당 법관들이 자리를 옮긴 탓에, 기피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법원이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 측은 지난해 12월 13일 “불공정한 재판이 우려된다”며 자신의 대북송금 혐의 사건을 담당하는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진우) 판사 3명을 바꿔달라는 내용의 법관 기피신청서를 법원에 냈다. 이를 맡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3부(재판장 박정호)는 61일 만인 지난 11일 각하 결정을 하고, 이 대표와 검찰 측에 각각 통보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는 이 대표와 그의 공범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관련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제3자 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사건을 심리 중이다. 이 재판부는 지난해 6월 이 전 부지사에 대한 대북송금 혐의 1심에서 징역 9년 6월을 선고했다.
이 대표 측은 이 재판부가 이미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의 1심에서 중형을 선고해, 이 대표의 사건을 연달아 심리하는 게 무죄 추정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은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대북송금 사건 4차 공판준비기일서 “재판부는 선행 사건인 이화영 사건에서 이 대표에 대한 유죄 예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고, 이화영 사건의 판결이 확정되면, 이 사건의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며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비춰볼 때, 재판부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고 전심(前審)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이 대표의 기피신청은 ‘재판지연 전략’이라고 했다. 당시 검찰은 “공범의 유죄 판결을 이유로, 재판부 기피 신청이 인용된 전례는 한 번도 없다”며 “기소된지 6개월이 지났지만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도 밝히지 않아 사실상 재판을 공전시켜왔고, (기피신청으로)또 다시 두 달 이상 재판이 공전될 것”이라고 했다. 또 “재판부 인사이동까지 고려한다면 기소 이후 1년 동안 한 차례의 공판도 잡히지 않는 공판 지연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기피신청이 각하됨에 따라 재판은 곧 다시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상 기피신청이 접수되면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이 멈춘다. 지난해 6월 기소된 이 사건은 8개월 동안 4차례의 공판준비기일만 진행됐을 뿐 정식 재판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앞서 이 대표 측의 재판 기피 신청에 대해 법조계에선 “2월 법관 정기 인사 때 현재 재판부가 바뀔 때까지 재판을 중단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재판이 멈춰있는 동안 법원은 정기 인사를 단행했고, 기존 수원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인 신 부장판사는 수원고법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머지 법관 2명도 각각 다른 법원으로 발령이 났다.
이 대표 측의 재판부 교체 시도는 이번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엔 수원지법에 기소된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 중인 자신의 대장동·성남FC 사건과 병합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냈다. 하지만 같은 달 15일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됐다.
이 대표 측은 같은해 9월에도 대북 송금 사건이 현 재판부에 배당되자, 재배당 신청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곧바로 다음달 8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가)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심리해야 공정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신 부장판사는 “(재판부 재배당은) 법률상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였던 2019년 당시 쌍방울 그룹의 대북 사업을 돕는 대가로, 경기도가 북한 측에 냈어야 할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와 자신의 방북비 300만 달러 등 800만 달러를 김 전 회장에게 대신 내도록 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이 대표가 대북사업과 방북 성사 등을 통한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사실상 쌍방울로부터 800만 달러에 달하는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 지난해 6월 12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