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김재규(가운데) 전 중앙정보부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출석한 모습. /조선일보 DB

10·26 사건으로 1980년 5월 사형이 집행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법원이 45년 만에 재심을 개시하기로 19일 결정했다. 유족이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는데, 5년여 만에 김재규의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다시 판단하게 된 것이다.

재심은 수사 검사나 수사관이 구타와 고문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을 때 청구할 수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는 이날 “계엄사령부 수사관들이 김재규를 수사하며 수일간 구타와 전기 고문 등을 한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며 “공소시효가 완성돼 확정 판결을 받을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해 범죄는 증명된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진영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혐의로 체포돼 내란목적살인·내란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 모두 사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1980년 5월 20일 상고를 기각하며 사형을 확정했다. 김재규를 변호한 고(故) 강신옥 변호사는 사형 확정 당일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확정 판결 나흘 뒤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김재규의 5촌 김진백씨는 2000년 1월 ‘민주화 보상법’이 제정되자, 이듬해 10월 김재규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고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에 신청했다. 그러나 4촌 이내 가족만 신청 자격이 있어 김씨의 신청은 각하됐다. 아내 김영희씨가 2004년 7월 다시 심의를 신청했지만 위원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20년 5월 유족은 “재판이 정당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10·26 사건과 김재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4년여 만인 작년 4월 첫 심문을 열었다. 재심 사건은 과거 자료 확보 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김재규 측 변호인단은 “김재규의 살인은 내란 목적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었다”며 “수사 당시 가혹 행위에 대한 증언이 나왔고, 공판 녹취록과 공판조서가 상당 부분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죄 형사재판,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묘한 결정이 나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법원 관계자는 “윤 대통령 재판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