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12·3 비상계엄 직전에 열린 회의에 대해 “형식적·실체적 흠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 총리는 “(적법한) 국무회의였는지 아닌지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고, 수사와 사법절차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10번째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통상의 국무회의와는 달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 측이 한 총리를 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 예산 삭감·방탄 입법·줄탄핵 등의 정치 상황에 대해 질문하자, 한 총리는 야당의 행태를 작심 비판했다.
윤 대통령 측은 양곡관리법·방송3법 등 야당 단독으로 의결한 법률안을 언급하며 “총리도 6개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6개 법률에 대해서 재의 요구했고 국회에서 다시 한번 마음을 열고 여야 간 협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재의요구라는 것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최선의 지혜와 공익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자유 민주주의의 제도”라고 했다.
한 총리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에 재의요구 250번을 행사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82번, 루스벨트 대통령은 635번, 가장 여야 협치가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레이건 대통령은 78회 재의요구를 했다”라며 “지금까지 행사한 재의요구는 지금까지 모든 과거 정부가 행한 재의요구를 합친 것보다도 더 많지 않나 생각된다. 앞으로 입법 협치는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정부가 재의요구권을 남발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한 총리는 이번 정부 들어 야당 주도로 총 29건의 탄핵소추가 발의된 이른바 ‘줄탄핵’ 상황에 대해 “29건의 탄핵소추가 국민 눈높이와 맞는지 정치권이 심각하게 이 문제를 논의를 해봐야 한다”며 “탄핵소추가 되면 직무가 정지돼서 얼마가 될 지 모르는 기간 동안 일도 하지 않고 충원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야당의 정부 예산안 단독 삭감 통과에 대해서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원전 개발 관련 예산과 검경 특활비·특경비 삭감으로 수사에도 지장이 있다”고 했다. 이어 “재난 재해 대상으로 하는 예비비도 깎여 향후 대응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한 관세 정책 등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예산도 매우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국회 측은 한 총리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제시하면서 비상계엄의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다. 한 총리는 수사 기관에서 “대통령님은 처음부터 국무회의는 생각하시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대통령께 ‘국무위원 말을 좀 들어보시죠’ 라고 해서 국무위원들이 모이게 된 것이고요”라고 진술했다.
조서 내용에 대해 한 총리는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소집하려고 했는지는 대통령의 계획이라 제가 속단 할 수 없다”면서 “국무위원들이 좀 모여 대통령을 설득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회의를) 제안했다”고 했다.
한 총리는 “국방부 장관이 국무총리를 거쳐 계엄선포를 건의해야 하는데 절차를 거쳤느냐”는 국회 측 대리인의 질문에 “(절차가) 없었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계엄 선포 시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국회에 통고한 사실이 있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또 “계엄 당시 헌법에 정해진 ‘전시 사변 비상사태가 존재하지 않았던거 명백하지 않느냐”는 국회 측 질문에 “법원과 국민이 최종적으로 판단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헌법 89조5항은 ‘계엄 선포와 해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측은 “국무위원 11명이 참석해 5분간 이뤄진 간담회 형식의 회의는 정상적인 국무회의로 보기 어렵고, 따라서 비상계엄은 헌법을 위배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은 “계엄이 갖는 비상한 성격에 비춰보면 당시 국무회의가 통상적인 국무회의와 다를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 이해해 달라”고 했다.
김형두 재판관은 한 총리에게 “이게 국무회의였느냐 아니냐에 대한 증인의 개인적 생각을 말해달라”고 했다. 이에 한 총리는 “그 판단을 개인적으로 하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김 재판관이 재차 “개인적 생각을 들어야 사법적 판단을 한다”고 하자, 한 총리는 “통상의 국무회의와는 달랐다”, “국무회의가 아닌 게 맞느냐는 질문에 상당히 동의한다고 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