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헌법재판소는 지난 1월 23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기각했다. 공직자 파면은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찬성과 반대가 4대4로 갈린 것이다. 그것도 평소 알려진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렸다.

이날 이후 13일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의 탄핵 심판까지 헌재에서 나온 주요 결정은 모두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결론 났다. 2주 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에 대한 권한쟁의 사건도 전원 일치 의견으로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헌재가 전원 일치 의견을 만들어가는 모양새”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4대4→8대0, 연이은 전원 일치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되기 전에는 헌재 결정이 재판관 성향에 따라 종종 엇갈렸다. 작년 12월 ‘8인 체제’가 구성된 뒤 처음 선고한 이진숙 위원장 탄핵 사건은 탄핵 사유부터 파면의 필요성까지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중도·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계선 재판관은 “파면해야 한다”고 했고, 중도·보수 성향인 김형두·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방통위 2인 체제’의 적법성을 정반대로 판단한 것이다.

앞서 작년 5월 헌정 사상 첫 현직 검사 탄핵 사건인 안동완 검사의 탄핵 심판도 재판관 9명 중 5명이 기각, 4명이 인용을 택해 기각으로 결론 났다. 이럴 때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재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가까워지자 헌재의 판결 기류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마 후보자 관련 권한쟁의 사건부터 이날 선고한 최 원장, 이 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해 연이어 전원 일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윤 대통령 변론 때도 여러 차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 성향 드러나는 ‘별개 의견’

결과는 ‘전원 일치’로 나왔지만,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은 ‘별개 의견’을 통해 미세하게 드러나고 있다.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논리나 근거가 다르다는 자기 주장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형식·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마 후보자 권한쟁의 사건에서 최 권한대행 측이 문제 삼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단독 권한쟁의 청구에 대해 “적법하려면 본회의 의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중도·진보 성향의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정계선 재판관은 “국회 의결이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공교롭게 추천·지명·임명 경로에 따라 의견이 나뉘었다.

이날 탄핵이 기각된 최재해 감사원장 사건에서도 중도·진보 성향인 이미선·정정미·정계선 재판관은 최 원장의 위법성을 강조하는 ‘별개 의견’을 냈다. 이들은 “최 원장이 국무총리에게 공익 감사 청구권을 부여한 것은 감사원의 독립성을 해쳐 위헌·위법”이라고 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진영 논리에 따라 판결한다는 비판을 의식해 ‘전원 일치’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재판관들 성향이 드러난다”고 했다.

◇尹 탄핵 심판도 전원 일치?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도 ‘반대 의견’ 없이 탄핵 여부를 ‘전원 일치’ 의견으로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론이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혼란과 분열을 막으려면 재판관 전원이 동의하는 결론을 내려고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졸속 심리, 불공정 재판 진행 등 여러 논란을 일으킨 헌재로선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전원 일치 결론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탄핵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려 있어서 일부 재판관이 전원 일치 의견을 반대하고 자기 의견을 고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전직 헌법재판관은 “평의가 비교적 길어지는 것은 재판관들 의견이 쉽게 안 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