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이날 판결은 이 대표가 받고 있는 다섯 개 재판 중 첫 번째 2심 결과다.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이 대표는 향후 대선 등에 출마하는 데 지장이 없게 된다. 선거법 사건의 법정 선고 기한은 오는 6월 26일이다.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는 이날 이 대표에 대해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이르지 못해 범죄사실 증명 없는 때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기간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실무자인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알았으면서 몰랐다고 말하고,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백현동 개발 부지 용도를 4단계 상향 조정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혐의 등으로 2022년 9월 불구속 기소됐다.
2심은 이 대표가 방송이나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을 매우 세세하게 나눈 뒤, 검찰의 공소사실과 뜻이 다르다거나 허위가 아니라고 밝혔다.
◇ 김문기 관련 발언 “허위 사실 공표 아니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문기씨와 관련해 ①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씨는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 ② 2015년 호주 출장 때 김씨와 골프 친 적이 없다 ③ 경기지사가 되고 기소된 후에야 김씨를 알게 됐다는 취지로 허위 사실을 말했다며 기소했다.
1심은 이 중 ②에 해당하는 이른바 ‘골프 발언’만 유죄로 인정했다. 이 대표가 2021년 12월 29일 한 방송에서 “출장을 가는데, 하위직 실무자인데 같이 갔으면 그 사람이 이 사람인지를 어떻게 압니까”라며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가지고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전체 일행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 내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 1심은 “이 대표는 호주 출장 중 김씨와 골프를 친 게 맞고, 고의로 허위 발언을 한 것이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이 발언은 ‘출장을 같이 갔더라도 하위 직원이었던 김씨를 모른다’는 취지일 뿐, 어디에도 ‘골프’라는 단어가 언급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2심은 “이 대표의 발언을 아무리 넓게 유추·확장 해석한다 해도 ‘골프를 치지 않았다’로만 해석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즉, 이 대표가 호주 출장 중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거나, 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허위 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대표가 김씨와 호주 출장 중 함께 찍은 사진과 관해서도 2심은 “김씨와 골프를 쳤다는 자료로 제시된 건데, 원본은 해외에서 10명이 한꺼번에 찍은 것이므로 골프 행위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볼 수 없다”며 “원본 일부를 떼어낸 거라 조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2심은 “이 대표의 골프 발언은 ‘이 사진은 조작된 것이므로 골프를 함께 친 사진이 아니다(증거가 되지 못한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이 대표는 ‘사진이 잘못됐다’는 것을 해명하는 데 방점을 두고 말했을 뿐, ‘김씨와 골프를 아예 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게 아니라 본 것이다.
이어 “이 대표의 발언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도 검찰의 공소사실에 부합하게만 해석하는 건 정치적 표현이나 선거 운동의 자유의 헌법적 의의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결과가 된다”며 이 대표의 골프 발언을 무죄로 판단했다.
아울러 2심은 이 대표의 ① 성남시장 재직 시 김씨는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 ③ 경기지사가 되고 기소된 후에야 김씨를 알게 됐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어떤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선거법이 금지하는 허위 사실 ‘공표 행위’가 아니라 ‘인식’이므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김씨와의 교유 관계(왕래)에 대해 이 대표가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백현동 발언’ 유죄→무죄…“과장 있었지만 허위는 아냐”
1심에서 전부 유죄로 인정된 ‘백현동 협박’ 발언도 무죄로 뒤집혔다. 1심은 “이 대표가 스스로 검토해 백현동 부지의 용도를 변경했고, 국토부로부터 협박을 당했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없다”며 관련 발언을 모두 유죄로 봤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백현동 관련 발언은 전체적으로 의견 표명에 해당해 허위 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이 대표가 “국토부 공무원들이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유기를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2심은 “상당한 압박을 과장했지만, 허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또 해당 발언이 유권자의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앞선 1·2심 재판에는 국토부와 성남시 전현직 공무원 20여 명이 출석해 “국토부의 협박은 없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날 이 대표는 하늘색 넥타이에 짙은 남색 정장을 차려입고 법정에 나왔다. 선고가 진행되는 약 1시간 33분 동안 그는 주로 눈을 감은 채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가끔 고개를 숙이거나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대체로 입을 다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재판장이 판결 요지를 모두 설명한 뒤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요지를 공시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묻자, 이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예”라고 답했다. 재판부가 법정을 나설 때까지 그는 법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재판이 끝난 뒤, 이 대표는 미소 띤 얼굴로 변호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수고하셨다”며 변호인들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