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된 친북 조직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의 연락책 박모(54)씨가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낸 기피 신청이 기각되자 즉시항고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박씨는 이미 1심 당시 기피 신청을 두 차례 내면서 재판을 지연시켰는데, 항소심에서도 같은 전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박씨의 기피 신청으로 재판은 두 달째 열리지 않고 있다.

대법원 깃발./뉴시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형사2부는 박씨가 항소심 재판을 맡은 형사1부를 상대로 낸 기피 신청을 지난달 27일 기각했다. 그러나 박씨는 지난 4일 기각 결정에 불복해 즉시항고했다. 박씨의 기피 신청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게 됐는데,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재판은 열리지 않는다.

박씨는 지난해 9월 1심에서 징역 14년과 자격정지 1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재판부는 충북동지회가 형법이 규정하는 ‘범죄단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국내 정보를 제공한 혐의, 중국 선양에서 북측이 제공한 공작금 2만달러를 받은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 2018년 4월 캄보디아에서 다른 조직원이 북측 공작원을 만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도 유죄로 봤다.

박씨와 검찰 모두 항소하면서 항소심은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형사1부가 심리하게 됐는데, 이 재판부는 다른 충북동지회 조직원 3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에 박씨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에서 재판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기피를 신청한 것이다.

기피 신청을 법원이 심리하는 기간이 박씨의 구속기간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다만 항소심 재판이 두 차례만 열린 상태여서, 기피 신청이 최종 기각되더라도 박씨는 재판 도중 풀려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창원자통 조직원들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뉴스1

이 같이 기피 신청을 통해 재판을 지연시키는 수법이 만연하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창원지법에서 1심 재판 중인 ‘창원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조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에서 재판을 받을 당시 재판부 기피를 신청해 6개월간 재판이 멈췄었다. 작년 4월 사건이 창원지법으로 이송됐는데, 첫 정식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이들은 재판부 기피를 다시 신청했고, 항고와 재항고를 반복해 냈다. 재판은 5개월 넘게 열리지 않고 있다. 박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법원이 기피 여부를 심리 중이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 이화영(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씨가 대북송금 재판부에 대해 기피 신청을 내 재판을 4개월 넘게 중단 시킨 바 있다. 지난달 28일 대법원이 최종 기각하며 재판은 재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