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15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완규 법체처장,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행위의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김정환 변호사가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과 함께 낸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헌법소원의 가처분은 민사·행정소송과 마찬가지로 재판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공권력의 작용을 일시정지하는 임시처분입니다. 본안심판이 부적법하거나 이유 없음이 명백하지 않고, 문제된 공권력 작용의 효력을 정지시켜야 할 긴급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인용됩니다.
헌재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만일 대행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고 하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어 가처분을 인용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한 대행이 두 사람에 대한 임명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했고 대통령 지명 몫의 헌법재판관은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실시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임명이 가능한 만큼 가처분으로 그 효력을 정지할 이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헌재의 이 같은 판단은 김 변호사가 다른 사건에서 헌법소원을 냈기 때문에 한 대행의 재판관 지명 행위로 재판청구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그런 논리구조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현직 법관은 “다른 헌법소송을 냈거나 낼 예정이라는 지위만으로 소(訴)의 이익이 인정될지 의문”이라며 “본안인 헌법소원이 부적법해 각하될 사안이라면 가처분을 통해 보전할 권리도 없기 때문에 인용 결론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헌법소원은 그 요건이 까다롭습니다. 공권력의 행사로 기본권이 침해되어야 하고 그 침해는 직접성·현재성·자기관련성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헌법소원이 아니고서는 권리구제를 받을 방법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하면 결국 헌재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각하(却下)됩니다.
이는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며 자기와 관련 없는 정치적 사안에 마구잡이로 소송을 내는 이른바 ‘민중 소송’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2024년 헌법재판소 사건 처리 현황을 담은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처리한 2725건 중 각하가 74.1%인 2021건에 달했습니다. 처리된 사건 중 70.6%가 헌법소원임을 감안하면 결국 헌법소원 대부분이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가처분의 경우에도 본안에 해당하는 헌법소원이 적법요건을 구비했는지에 대해 적지 않은 법조인들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헌법소원의 적법 요건을 따로 따지지 않고 ‘본안이 이유없음이 명백하지 않다’며 사전처분인 가처분을 인용했습니다.
법조계에선 이런 가처분이 받아들여진다면 앞으로도 특정 재판관의 임명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내는 민중소송이 빈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때도 헌재가 소송의 이익을 비롯한 적법요건을 인정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동안 헌재는 가처분의 판단에 비교적 소극적이었습니다. 따로 판단하지 않고 두다가 본안과 함께 기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형배·이미선 두 재판관의 퇴임을 앞두고 15일과 16일 연달아 평의를 잡았고 두 사람의 퇴임을 3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16일 저녁 무렵 재판관 전원일치로 ‘인용’ 결정을 했습니다. 이로써 한 대행의 재판관 후보 지명행위는 효력이 정지됐고 결국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대선 이후로 넘어가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