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카드사로부터 수천만 원을 대출받아 빚을 ‘돌려막기’한 채무자를 사기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비대면으로 대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사람’을 속인 건 아니라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최근 사기 혐의로 기소된 60대 박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에 돌려보냈다.
박씨는 2022년 6월 대출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 스마트폰에 설치된 카드회사 앱을 통해 2차례에 걸쳐 3450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박씨는 이미 사채 등 채무가 약 3억원에 달했고, 기존 카드 대출금이 월수입을 넘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박씨에게 사기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1심은 “범행 의도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동일하게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법상 사기죄 성립 요건인 기망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하고, 사람에 대한 기망 행위를 수반하지 않으면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 판례에 따라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박씨가 카드사 앱을 이용해 자금 용도, 보유 자산, 연소득 정보 등을 입력한 데 따라 대출이 전산상 자동적으로 처리돼 대출금이 송금됐고, 그 과정에서 직원이 대출 신청을 확인하거나 송금하는 등 개입했다고 인정할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박씨가 카드사 직원 등 사람을 기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한 법조인은 “갚으려는 의도 없이 대출을 한 박씨의 행위 등은 업무방해 등 다른 법 조항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