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지난 2023년 1월 18일 오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있는 모습. /뉴스1

검찰이 북한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로 1심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석모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에 대한 항소심서도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선고일은 다음달 13일이다.

수원고법 형사2-3부(재판장 박광서)는 22일 오후 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석씨, 전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씨, 전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씨, 전 민노총 산하 모 연맹 조직부장 신모씨 등 전 민노총 간부들에 대한 항소심 마지막 재판을 열었다.

이날 검찰은 이른바 ‘민노총 간첩단’ 사건 주범으로 꼽히는 석씨에게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20년을 구형했다. 또 김씨에게는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 양씨는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 신씨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각각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난 1심 구형량과 같은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대한민국 체체 전복을 위해 북한의 문화교류국과 동조·연계해 대남혁명을 수행하려 한 것으로, 이는 헌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들은 국내 최대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간부 지위를 이용, 노조활동을 빙자해 북한 공작원을 접선하고 간첩행위를 했다”고 했다.

검찰은 또 “북한과 많은 수의 지령문과 보고문을 주고받으며 지령에 따라 활동해 대한민국에 크나큰 위험을 초래했다”며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수원법원종합청사. /뉴스1

석씨의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원심 판결은 실체가 없는 지하 조직을 인정해 중형을 선고했다”며 “조직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목적으로 누구를 통해 결성 됐는지 아무 내용이 없고, 강령이나 규약, 가입 여부나 절차에 대해서도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석씨가 북한에 전달한)민노총 위원장 출마 후보들에 대한 성향이나, 평택 미군기지, 오산 공군기지 등 시설 사진은 일반인에게도 공개된 자료로 군사기밀이나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며 “피고인은 이미 20년간 몸 담았던 직장을 관두고 사회로부터 격리됐다. 원심 형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했다.

나머지 피고인들 변호인은 “공소사실이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민노총이 북한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는 프레임에 기반해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으로, 1심 판결은 이에 일부 공감한 것”이라고 했다.

최후 진술에 나선 석씨는 “민노총을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싶어 하는 거 같지만 자주적으로 운영되는 대중 단체로, 어느 한 사람과 세력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의 틀 속에서 과도하게 해석돼 민노총 전체가 왜곡되지 않도록 신중한 판단을 해달라”고 했다. 다른 피고인들은 모두 “억울하다”고 입을 모았다.

석씨는 2018년 10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총102회에 걸쳐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보고문을 써 보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해외에서 세 차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한 혐의도 받았다.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전직 간부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해11월 6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 및 국면전환용 공안정국 조성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1심 판결에 따르면 석씨는 민노총 내부에 비밀조직을 만들었고 ‘지사장’으로 불렸다. 김씨는 ‘강원지사장’, 양씨는 ‘2팀장’으로 불렸다. 북한 공작원과는 일종의 ‘은어’를 주고받았는데 김정은은 ‘총회장님’, 북한 문화교류국은 ‘본사’, 자신들이 만든 비밀조직은 ‘지사’, 민노총은 ‘영업1부’라고 했다. 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과 유튜브 동영상 댓글도 대북 연락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석씨는 2018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민노총 내부 통신망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겼다. 2020년에는 민노총 선거에 출마한 위원장 후보들의 성향과 동향 등을 수집해 보고했다. 그해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에는 국회의원 전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북한 공작원에게 넘겼다. 2021년에는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을 근접 촬영해 북한에 전달했다.

북한이 2018~2022년 민노총 총파업, 2022년 대선, 미국 바이든 대통령 방한, 한미 연합훈련,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 전후로 석씨에게 ‘정치투쟁으로 승화’ ‘반미·반일 투쟁 분위기 고조’ ‘반(反)보수 감정 확산’ ‘윤석열 퇴진’ 등 활동 방향을 담은 지령을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6일 1심 재판부는 석씨에게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또 김씨에게는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7년, 양씨에게는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 신씨에게는 무죄를 각각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