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7차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 경원중학교의 졸속·밀실행정 및 정희숙 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습니다. /경원중학교 학부모 제공

7일 서울 서초구 경원중학교 인근에는 ‘○○○(경원중 교장 이름) 죽어서도 너를 잊지 않겠다’ ‘혁신학교 필요 없다’ 등 현수막 40여 개가 붙어있었다. 이 학교 학부모들과 근처 반원초등학교 학부모회,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이 게시했다. 경원중은 최근 서울시교육청의 ‘마을결합 혁신학교’로 지정돼 내년 3월부터 혁신학교로 운영된다.

이날 오후 반원초·경원중 학부모 100여 명은 경원중 앞에 모여 “교장이 직접 나와 혁신학교 철회 입장을 내라”고 요구했다. 이들이 퇴근하는 교직원 차량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학부모가 차량에 치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학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더 이상 마을결합 혁신학교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합의했지만 학부모들은 이날 오후 10시까지도 학교 앞을 떠나지 않았다.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10여 명도 퇴근하지 못하고 교내에 머물렀다.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에 올라온 ‘혁신학교 지정 반대’는 이날까지 1만1000여 명이 동의해 교육감 답변 요건(1만명)을 채웠다.

한 학부모가 경원중학교 앞에서 혁신학교 지정 철회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경원중학교 비대위 제공

혁신학교는 좌파 교육감들이 2009년부터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교육 과정 운영이 비교적 자유롭고 토론과 참여 위주의 수업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저하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어 상당수 학부모가 거부감을 보인다. 경원중 측은 “학부모들이 걱정하는 바와 같은 방향의 혁신학교는 운영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호소문까지 냈지만 학부모들은 “혁신의 ‘혁’ 자도 붙는 게 싫다”는 반응을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학부모 69%가 혁신학교 지정에 동의했고, 교원도 80% 이상이 동의했다”며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혁신학교 공모 신청을 하려면 ‘교원 50% 또는 학부모 50%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찬반 투표 과정에서는 혁신학교로 운영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원중이 지정된 마을결합 혁신학교는 내년부터 새로 도입되는 혁신학교 유형이기 때문이다.

경원중은 작년부터 ‘마을결합 중점학교’로 지정돼 예산을 지원받고 있었다. 마을결합 중점학교는 지자체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연간 300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를 다양화하겠다며 마을결합 중점학교로 운영되던 학교를 대상으로 마을결합 혁신학교 공모를 받았다. 마을결합 혁신학교가 되면 연간 최대 7700만원까지 예산을 받을 수 있다. 초등학교는 50%, 중·고교는 25%까지 교장이 초빙한 교사를 데려올 수 있는 기존 혁신학교 인사 구조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부모 김모씨는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해왔던 사업이니 기존 혁신학교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인 줄 알고 동의했다”며 “신종 혁신학교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반발이 극심하자 경원중은 지난 5일 학부모에게 “교육적 성과(마을결합 중점학교)에 대한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받기 위해 마을결합 혁신학교에 공모하게 된 것”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한편 경원중과 함께 마을결합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 강동구 강동고도 지난달 27일 서울시교육청에 “학부모 반발이 심하니 혁신학교 선정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학교 역시 1년간 마을결합 중점학교로 운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