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키백과

“청소년 대상 모의투표 허용하고, 정당 가입 연령은 16세로 낮춰야 한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한 학교 모의투표 교육을 불허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기존 입장을 뒤집고, 고교생들에게도 정당 가입을 허용하자고 나서자 교육계가 찬반 논란으로 들썩이고 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는 반발도 터져 나온다. 선관위는 지난 25일 현행 ’18세 이상'인 정당 가입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낮춰 고교생도 정당 발기인이나 당원이 될 수 있게 하고, 청소년 대상 모의투표도 허용하자는 내용을 담은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진보·좌파 성향 교육감들과 시민단체들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모의투표 교육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제동을 걸었던 선관위가 1년여 만에 모의투표를 허용하자고 나서고, 한술 더 떠 16세 학생에게도 정당 가입과 투·개표 참관을 허용하자며 정치 활동의 문을 대폭 열자고 앞장선 것이다.

◇선관위 “원활한 교육 위해 허용해야”

교육계는 선관위 입장 변화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미 발의한 이른바 ‘청소년 사다리 4법’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당 가입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것은 물론이고, 16세 이상 청소년에게 교육감 선거권을 주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들(정당법·지방자치법·지방교육자치법·초중등교육법)을 염두에 두고,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선관위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던 초·중·고교 모의투표 교육에 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 모의투표는 학생들이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와 정당의 공약 등을 따져보고 실제처럼 투표하는 식으로,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교 40곳에서 모의투표 교육을 하려고 추진 중이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교육감 선거 때 후보 매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물러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이사장인 사단법인 ‘징검다리 교육공동체’에 선거 교육 자료 제작과 교원 연수 등을 맡겼다. 또 모의투표 프로젝트 추진단에는 2017년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유사·파시스트 수구 정당일 뿐”이라고 주장한 교수를 단장으로 위촉해 논란을 불렀다. 이런 정치적 편향성 등을 우려해 모의투표를 불허했던 선관위가 이번에는 “청소년 대상 모의투표는 선거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며 “교육 목적의 여론조사로 보고 선거 여론조사에서 제외하도록 법을 개정해 원활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입장 변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위원 구성이 작년 초와 달라진 점도 꼽는다. 지난해 3월 이후 선관위 위원 9명 가운데 7명이 문재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더불어민주당이 임명한 인사로 구성된 점이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고교생을 정당 홍위병 만드나”

교육계는 초·중·고교 대상 모의투표 활성화와 고교생 정당 가입 등에서 일부 교사의 정치적 편향성이 개입되는 것을 우려한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2018년 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주관한 모의투표에 참여한 중·고교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교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응답이 12%로 집계됐다.

교총은 선관위가 정당 가입 연령을 16세로 낮추려는 것에 대해 “정당에 가입한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정당 홍보, 정당 가입 권유 활동 등 각종 정치 활동을 하게 돼 교실이 정치판이 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도 침해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이념 대립이 극단적인 정당·정치 문화가 학생들에게 파고들어 교실이 이념과 정치로 오염될 우려가 크다”며 “선관위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 교육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고교생 전체의 정당 가입 허용을 추진하려는 이유와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조윤희 대한민국 교원조합 위원장은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에 투표권 없는 16세 청소년들의 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오히려 학생들을 이념과 선전·선동의 각축장으로 내몰고 미래 홍위병으로 만들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선관위의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은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의견으로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전교조도 만 16세 이상 교육감 선거권 보장 등을 주장하고 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고교생 정치 참여 확대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