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 모습. /일성여중 제공

서울 마포에 있는 한 여중·여고의 입학식과 졸업식 풍경은 특별하다. 학생들의 나이가 한눈에 봐도 ‘지긋’하다. 교복 대신 한복을 입고 있다. 가장 어린 학생이 40대, 많게는 80대도 있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오는 23일 중학교 256명, 고등학교 236명의 졸업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이곳은 어린 시절 다양한 이유로 제때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만학도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일성여고를 졸업하는 김용인(83)씨는 “학창시절은 정말 꿈같은 세월이었다”고 했다. 손주들은 “우리 할머니 짱이야”라고 응원해줬고, 남편도 “학교 갔다 오느라 배고프지?”라고 물으며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려줬다고 했다. 김씨는 영어 시간에 배운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요(I’m proud of myself)’라는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며 “어린 시절부터 너무도 하고 싶던 공부를 원 없이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자(63)씨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장녀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으로 보내졌다”며 “주 4일은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작업을 하니 중학교 진학은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결혼 후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집안 형편은 좋아졌고, 아이들도 결혼시켰지만 그러고 나니 어느새 60대가 되어있었다고 했다. 정씨는 한 대학교 보건복지학과에 합격했다. 후배들을 향해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됐다. 하면 된다는 분명한 진리를 믿으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일성여고를 졸업한 이들 중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며 현재는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은 한미향씨는 “단국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한 후 지금은 다시 우리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지도하는 분도 있다”며 “제가 일반 학교에도 있어봤지만 우리 학교의 수업집중도가 가장 높다는 건 자부한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신다”고 말했다.

일성여고 3학년 학생회장 고금자씨(오른쪽)가 졸업식을 앞두고 담임 교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일성여중 제공

평생학교라고 하지만 교육과정이 널널하지는 않다. 방학은 2주뿐이고 토요일까지 학과 과정이 진행돼 3년 교육과정을 2년으로 단축했다. 한씨는 “학교에서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시는 분들이 많아 대학에서 조별 과제를 할 때도 젊은 학생들에게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청소년지도사로 활동하는 분들도 많고, 박사학위까지 딴 분들도 있다”고 했다.

오는 3월 2일에는 이곳에서 뒤늦게 배움의 장을 펼칠 이들이 입학식을 가진다. 중학교 320명, 고등학교 240명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중학교 입학생 박희문(84)씨는 “배고팠던 6살 서울 사는 이모네에 가면 밥을 잘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 상경했지만 형편이 여유롭지 못해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며 “그게 늘 한이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간 노래교실을 10년 넘게 다녔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장기자랑이 있으면 꼭 출전하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강원도 홍천에서 왕복 7시간을 통학하며 일성여중을 졸업한 이금열(66)씨도 이번에 일성여고에 진학한다. 이씨는 7년 전 위암 판정을 받은 남편 건강을 위해 홍천으로 이사했고, 2020년 남편이 완치 판정을 받자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이씨는 “학교에 다니는 게 피곤하지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콧노래가 나온다”며 “열심히 배워서 동네 마을회관에서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께 글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1952년 야학으로 시작해 현재처럼 성인여성을 위한 학력인정 2년제 학교가 된지 22년이 됐다. 학교 관계자는 “‘못 배운 것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탓이요, 남자 형제에게 밀려 뒤처진 탓’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옛날이 회상되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이 많다”며 “감동의 현장인 우리 학교 졸업식과 입학식에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