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유명 대학들에 ‘AI(인공지능) 전공’을 개설해 인재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한국 대학들은 정부의 정원 규제와 경직된 연봉 체계 등에 갇혀 앞서 나가지 못하고 있다.

5일 대입정보포털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일반 대학 기준 ‘인공지능’ 또는 ‘AI’가 이름에 들어간 이공계 학과는 106개다. 이 학과들의 총 모집 인원은 6391명이지만, 교육계는 “상당수 학과는 ‘AI 전문 인재’를 키운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사회적으로 AI 기술 수요가 높아지자 기존 자동차, 로봇, 반도체 등 이공계 학과에 AI 관련 교육을 일부 추가한 수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수진도 AI 전문가로 구성된 곳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요 상위권 대학이 몰린 수도권은 각종 정부 규제 때문에 사회적 수요만큼 AI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증원하기가 어렵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수도권 대학은 총 입학 정원이 총량제(11만7145명)에 묶여 있어 마음대로 증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AI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내부 반발로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이 20년 전 100여 명에서 현재 800명 수준까지 늘어날 때 서울대는 20년째 55명에 묶여 있다가 최근 소폭 늘어 올해 입학 정원이 64명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첨단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수도권 대학들의 반도체·바이오·AI 등 첨단 학과 정원을 1300명 늘릴 수 있게 허용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AI 학과’ 증원은 205명에 그쳤다. 실제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AI 학과를 신설해도 교수를 못 구해서 강의 개설을 못 하는 대학이 생겨나는 등 구인난도 심각하다. 한국 대학은 여전히 교수 임금이 ‘호봉제’인 곳이 많아서 특정 교수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기 어렵다. 재작년 신설된 한 대학 AI 학과 교수는 “임금이 적어서 AI 학과 정원을 더 늘려봤자 교수를 못 뽑아서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박사 인력 공급도 부족하다. 중국의 박사 취득자가 2019년 6만2578명에서 2022년 8만2320명으로 급증하는 동안 한국은 2019년 1만5308명에서 2024년 1만8714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공계 전공(의약학 제외)만 증가 폭을 따져보면 같은 기간 중국은 3만6946명에서 4만7184명, 한국은 6713명에서 7664명이다.

정부는 AI 등 첨단 전공 석·박사를 양성한다며 작년 서울대·서강대·중앙대 등 12개 대학 43개 학과 정원을 늘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학과들의 2024학년도 신입생 충원율이 73.6%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