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생 한진석/피플/2월21일자/김민기/본인제공
지난달 경희대 한의대생 한진석(왼쪽)씨가 전남 완도군 생일도의 생영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교육 봉사를 하던 중 밝게 웃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방학이 되면 생일도를 찾아 아이들을 가르친 그는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며 생일면장 명의의 특별 감사장을 받았다./한진석씨 제공

전남 완도군에 있는 인구 800여 명의 작은 섬 ‘생일도’. 지난달 23일 생영지역아동센터에서 ‘특별 감사장 수여식’이 열렸다. 생일면장 명의의 감사장을 받은 주인공은 올해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한 한진석(33)씨를 비롯한 대학생 봉사자 5명이었다. 채종대 생일면장은 “교육 봉사자들은 학원 하나 없는 이곳을 방학 때마다 찾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함께 놀아줬다”며 “한씨가 이번에 학교를 졸업해 오랜 기간 봉사한 그에게 면민들이 특별 감사장을 주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고 했다.

한씨는 지난 11년간 여름·겨울방학 때마다 생일도를 찾아 교육 봉사를 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던 2014년, 선배에게 섬 봉사활동 제안을 받은 게 계기였다. 생일면 측은 섬의 초·중·고교생 30여 명을 위해 2004년부터 대학생 교육 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한씨는 한번 가면 일주일씩 생일도에 머물며 아이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쳤다. 그러다 문득 ‘공부뿐 아니라, 미술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도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생일도 홍보 대사’가 되어 친구들에게 생일도 봉사를 권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진석씨 제공

2016년 서울대를 졸업한 한씨는 2018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이듬해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했다. 그때부턴 의대생, 한의대생 친구들을 모아서 섬을 함께 찾았다. 한 팀에 5~6명씩, 3팀이 1주씩 섬에 머물렀다. 초창기엔 한두번 왔다가 그만두는 대학생이 많았지만, 한씨가 지인들과 팀을 꾸리면서 대부분 꾸준히 생일도에 왔다.

생일도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하나씩 있다. 고등학교는 육지로 나가야 한다. 학원은 하나도 없다. 생영초 학생 23명, 금일중 생일분교 학생 7명은 학교가 끝나면 아동센터에 옹기종기 모여서 공부를 한다. 센터 소속 교사 1명이 모든 학생의 공부를 봐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씨를 비롯한 대학생들이 오는 방학은 ‘집중 특강’ 시간이 됐다. 의대생·한의대생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뿐 아니라 어깨, 허리 건강에 좋은 스트레칭 방법도 알려 줬다.

대학생들의 방문은 생일도 아이들에게 큰 변화를 갖고 왔다. 섬마을엔 놀거리가 마땅치 않아 스마트폰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가 많았다. 그런데 방학이면 대학생 형·누나들이 하루 종일 공부를 가르쳐주니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줄고 공부하는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 나중엔 대학생들이 돌아간 후에도 학교 끝나고 스스로 책상 앞에 앉는 아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한씨는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입시 상담’도 해줬다. 어떤 학교, 학과에 지원하는 게 좋을지 추천해주고, 자기소개서 쓰는 법도 알려줬다. 그는 강원 철원군에서 군 복무를 할 땐 친구들에게 대신 봉사를 부탁했다. 직접 못 가는 게 미안해 교재·학용품비를 아동센터 계좌로 보냈다고 한다.

/한진석씨 제공

이런 노력 덕에 섬마을에서 명문대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고려대, 숙명여대, 광주교대 진학자를 배출했다. 한씨는 “광주교대에 간 친구는 이젠 학교 선생님이 됐는데, 지금도 ‘쌤, 쌤’ 하면서 연락한다”며 웃었다.

아동센터 관계자는 “젊은 대학생들이 꾸준히 오니까 아이들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더라”며 “선생님들이 탄 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이들이 선착장으로 몰려가서 기다리고, 선생님들이 떠날 때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펑펑 우는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생일도에 가려면 3시간 30분 버스를 타고 광주광역시에 간 다음 한 차례 환승해 다시 2시간 30분 달려 전남 완도 당목항에 가야 한다.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면 생일도다. 아침 8시에 출발하면 오후 4시에 도착하는 고된 일정이다. 지난달엔 한의원 취업 면접을 보고 서울에서 밤에 출발해 광주버스터미널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다음 날 오전 생일도에 들어가기도 했다. 몇 시간이라도 아이들을 더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한씨는 “오가는 데 이틀이 걸리니 11년간 힘든 날도 많았지만, 아이들과 한 약속이니까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생일도에 다녀오면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나도 마음을 다잡고 일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경희대를 졸업한 한씨는 서울 한 한의원에 취업해 출근을 앞두고 있다. 이젠 방학이 없으니 학생 때처럼 생일도에 가긴 힘들다. 그래도 소액 후원을 하거나, 휴가 때 짧게라도 계속 생일도를 찾을 생각이다. “이제 한의사가 됐으니 의료 봉사를 할 수도 있지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