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들의 통폐합이 본격화되면서 2027년까지 대학 최소 8개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대학은 너무 많아 부실 대학이 쏟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대학 통폐합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혁신하는 지방대에 1000억원씩 지원하는 정부의 ‘글로컬 대학 사업’에 통폐합을 내걸고 선정됐던 6팀(13대학)이 최근 교육부에 ‘대학 통폐합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대학은 통폐합 방안을 두고 학내 구성원과 지역 사회 갈등이 심했지만, 교육부가 지난달 20일까지 신청서를 내지 않으면 지원금 50%를 삭감한다고 경고하자 막판에 극적으로 합의해 기한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재작년 10월 일찍이 신청서를 내고 통폐합 절차를 밟았던 안동대와 경북도립대는 1일 ‘국립경국대’로 출범했다.
강원대와 강릉원주대는 통폐합 대학 교명을 ‘강원대’로 정하고 내년 3월 출범하겠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지난달 20일 냈다. ‘통합 강원대 총장’ 산하에 각 캠퍼스(춘천·강릉·삼척·원주)를 운영할 ‘캠퍼스 총장’을 두며 학과 통폐합과 교직원 조직 개편 등 ‘슬림화 방안’ 등이 담겼다고 한다.
원광대와 원광보건대는 ‘원광대’로 통폐합한 다음 생명 산업 특화 대학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창원대·경남도립거창대·남해대 등 3곳은 ‘국립창원대’로 바뀐다.
목포대·전남도립대는 ‘국립목포대’라는 이름으로 내년 3월 출범하기로 했다. 목포대는 향후 순천대와 2차 통폐합도 진행해 호남 최대 거점 국립대인 ‘국립한국제일대’가 된다는 계획이다. 충북대·한국교통대(통폐합 교명 ‘충북대’), 부산대·부산교대(부산대)는 2027년 3월 통폐합한다. 2년 뒤면 통폐합 대학이 총 7개 생기며 대학이 최소 8개 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통폐합을 둘러싸고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강원대·강릉원주대가 통폐합 신청서를 내자 강릉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즉시 “강릉 지역 희생을 강요하는 강원대 위주 통폐합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충북대·한국교통대도 통폐합 후 대학 본부를 어느 지역에 설치할 것인지를 두고 지역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부산대·부산교대, 경북대·안동대 등 수많은 대학이 통폐합을 시도했지만 학내 구성원과 지역 주민 반발에 대부분 무산된 바 있다.
이에 교육부와 글로컬대학위원회는 최근 논의 끝에 대학들이 신청서에 밝힌 기한 내에 통폐합을 이루지 못하면 글로컬 대학 사업 지원금을 전액 환수한다는 강수를 마련했다. 통폐합이 안 되면 이미 글로컬 대학들에 지급한 지원금까지 환수하겠다는 뜻이다. 글로컬대학위원회 관계자는 “지원금만 타고 통폐합이 흐지부지되는 일은 없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올해도 글로컬 대학 사업에 10팀을 선정할 계획인 만큼 통폐합되는 대학은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부는 이달 말쯤 대학들의 지원서를 받고, 4월 예비 지정을 한 다음 8월에 최종 글로컬 대학을 선정한다. 한국해양대는 목포해양대와 통폐합을 추진하고, 충남대와 공주대도 통폐합을 내걸고 올해 사업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그간 학령 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구조 조정’을 적극적으로 해왔지만 성과가 지지부진했다. 2000년 이후 폐교한 대학은 22곳밖에 없고, 이 중 자진 폐교한 곳은 6곳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지방대들이 스스로 통폐합에 나서며 2년 만에 8곳이 줄어드는 것이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가운데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느낀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 1000억원을 계기로 결심한 결과로 분석된다.
교육계에서는 여전히 전국적으로 200곳 가까운 4년제 대학이 난립하고 있는 만큼 부실 사립대가 자진 폐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사립대는 문을 닫으면 학교 재산이 모두 국가로 귀속된다. 이에 학교 경영진이 학생 수가 적어도 문을 닫지 않고 부실하게 대학을 운영하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김한수 경기대 경영학부 교수가 작년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실시한 사립대 재정 진단 결과를 분석한 결과, 수년 내 ‘운영 손실’을 볼 사립대가 94곳(일반대 34, 전문대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지금 상태가 유지되면 미래의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보고 국가 보조금이 계속 흘러가 고등교육 전반의 경쟁력 악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부실 대학들의 자진 폐교를 유도하기 위해 폐교 절차 후 남은 재산 일부를 ‘해산 정리금’ 형태로 경영진에 돌려주는 ‘사립대학구조개선지원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법안은 지난달 20일 여야 합의로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고 이달 내 교육위 전체 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