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앞으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뉴시스

전국 의대 40곳 중 10곳은 수강 신청을 한 학생이 ‘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학교에선 올해 신입생인 2025학번들도 수업 참여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의대 정원이 1500명 가까이 늘어난 후 입학한 신입생조차 ‘의대 정원 축소’라는 의료계와 선배들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계에선 “의대 증원 정책의 최대 수혜자들이 미래 후배들을 위한 사다리는 걷어차는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25학년도 1학기 의과대학 수강 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전국 의대 40곳의 수강 신청 인원은 총 421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학생 1명도 수강 신청을 하지 않은 의대가 전국 40곳 중 10곳에 달했다. 이들 학교에선 올해 신입생부터 본과 4학년까지 모든 학년에서 수업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나머지 30곳 학교들에서도 상당수가 수업 거부를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은 의대 정원이 전년(3113명)에 비해 약 50% 가까이(1497명) 늘어난 4610명인 상황에서 입시를 치렀다.

◇의료계 원로 “의대 정원 2024년 수준으로” 성명 준비

올해 40곳 의대의 2025학번 신입생은 상당수 대학이 일괄적으로 수강 신청을 진행했는데도 10곳에서 수강 신청 인원이 ‘0’을 기록했다. 이 대학들은 앞으로 약 1주일간 추가 수강 신청이 가능한 ‘정정 기간’을 갖지만, 실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적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실제 지난달 25일 기준 충남대와 전북대 본과 1~4학년 중 수강 신청을 한 이는 아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대·강원대는 본과생 6명, 제주대는 8명만이 수업을 신청했다. 학생들 복귀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부 의대는 3월 중순 이후나 4월로 개강을 미뤘었다.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가운데 3분의 1가량은 늘어난 정원 덕분에 의대에 입학한 학생이다. 추가 합격을 통해 의대에 들어간 수험생도 예년보다 늘었다. 부산대 의대의 경우, 정시 최초 합격자 중 13명이 등록을 포기해 다음 순번에게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 같은 추가 합격생은 전년도(5명)의 3배 수준이었다. 각 대학에서도 연쇄적으로 상위권 합격자의 이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의대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선배 의대생과 함께 수업 파행에 동조하는 것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의대 신입생의 이 같은 휴학 동참 움직임에는 선배들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각 의대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환영 행사)에서는 선배들이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 시간 ‘투쟁의 필요성’을 설명하거나 휴학을 권유하는 움직임이 다수 나타났다. 의대 특성상 신입생은 전공의 기간을 포함해 선배들과 약 10년간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 또 공부 과정에서 시험 기출 문제, 이른바 ‘족보’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선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독특한 구조다. 경찰은 최근 동맹 휴학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고 수업에 복귀한 의대생들의 실명 등을 유포한 의혹을 받는 연세대 의대생에 대한 입건 전 조사(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대학들 측에서는 의대 신입생마저 수업 참여 의사를 보이지 않은 데 대해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각 의대는 늘어나는 신입생들을 위해 대형 강의실을 마련하고 교원을 충원하는 등 재정 지출을 했다. 특히 지방대들이 적잖은 투자를 했다. 한 지방대 총장은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학교 입장에선 교원 월급이나 시설 유지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0여 명의 전직 의대 학장, 병원장 등 의료계 원로들은 의료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조속히 합심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 발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이날 알려졌다. 여기엔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2024년 정원으로 되돌려야 한다’ ‘2026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은 의료계와 협의하여 합리적인 기구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제언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의학 교육과 의사 수련의 질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는 의학 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책을 즉시 마련해야 한다’고도 제안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