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에서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이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화여대 139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문·사회 계열이 아닌 이공계 출신 총장이 탄생했다. 지난달 이화여대 제18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향숙 신임 총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시대에 대한 대비, 이화여대의 평판 하락 등 위기 상황을 극복할 인물로 학교 구성원이 저를 선택한 것이라 본다”며 “정치·사회·문화 분야에서 수많은 여성 인재를 배출한 이화여대가 이제는 한국 과학기술계를 이끌 ‘여성 리더’를 쏟아내는 요람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장은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교수로 있으며 대한수학회 회장,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 한국연구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암호학 분야에서 국내 대표적인 연구자로 꼽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화여대가 맞은 위기란.

“이화여대는 전통적으로 인문·사회 계열 경쟁력이 강한 학교다. 그런데 첨단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대학 평판에서 이공계열이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이화여대는 1996년 공대가 처음 설립됐다. 다른 주요 대학에 비하면 역사가 짧고 투자 규모도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세계 대학 평가 순위 등 대외적 평판이 하락한 이유다.”

-대안은 무엇인가.

“총장 선거 기간 교직원 수백 명을 만났다. 가장 많이 나온 얘기가 ‘연구 몰입 환경에 대한 지원’이었다. 우수한 연구 성과가 좋은 평판으로 이어지고 질 좋은 교육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임기 내 연구비 등 3000억원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개발 경쟁력을 강화해 평판을 제고하고 ‘글로벌 명문 사학’으로 만들겠다.”

-공약이었던 ‘모든 이화인을 위한 인공지능(AI 4 All Ewha)’은 무엇인가.

“모든 학생이 AI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할 뿐만 아니라, ‘전공 맞춤형’ AI 과목을 신설하는 등 교육과정을 개편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예컨대, 생성형 AI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교육하는 교과목, AI 시대에 필요한 법과 제도를 탐구하는 교과목 등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 관련 ‘소단위 전공(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 개설도 추진한다.”

-이공계 출신으로서 보는 미래 사회는.

“첨단 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후폭풍에 대한 학문적 고려도 절실하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양자 컴퓨팅 칩을 개발하며 세계가 들썩였다. 양자 컴퓨터가 등장하면 인터넷과 모바일 세계의 표준인 암호화 알고리즘 ‘RSA 암호’ 등이 한순간 깨져버릴 위험이 크다. 이처럼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어떻게 통제하고 어떤 윤리적 잣대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기술 발전에 뒤처지면 안 된다. 인문·사회 전공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화여대의 미래 전략은.

“첨단 기술에만 집중하느라 이화여대의 전통 강점인 인문·사회 경쟁력을 잊어선 안 된다. 함께 발전하는 ‘균형 잡힌 교육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경영대학원에 AI&비즈니스 분석(BA) 전공을 신설하는 등 문·이과를 넘나드는 융합 전공을 활성화하겠다.”

-대한수학회 첫 여성 회장을 지냈는데.

“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취를 이어나가면 이공계에서도 충분히 여성 리더가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

-이공계는 여전히 성비 불균형이 크다.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남녀 불균형이 심하다. 여성 연구자 비율이 2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2021년 기준). 공학 전공 여학생 비율도 아직 20%대에 머문다.”

-이공계에 여성이 늘 것이라고 보나.

“올해 이화여대 인공지능데이터사이언스학부 경쟁률이 13.82대1이다. 평균 경쟁률 4.31대1의 3배다. 첨단 기술이 생활 영역으로 확대되며 여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은 계속 늘고 있다. 이화여대는 고급 여성 인재를 우리 사회에 진출시켜 여성의 관점을 통해 발전을 이끌어낸 대한민국의 사회적 자산이다. 이제는 한국 과학기술계를 이끌 여성 인재 양성을 선도하겠다.”

-재정난을 호소하는 대학이 많은데.

“정부 재정 지원은 국립대에 집중되는데,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이 17년째 계속됐다. 사립대 경쟁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부금 모금 등 각 대학 ‘개인기’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다. 한국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OECD 평균의 66%밖에 안 된다. 초·중·고 학생 1인당 교육비보다 적다. 대학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정부의 획기적인 재정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이화여대 이향숙 총장

이화여대 수학과(학·석사)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대학원 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로 부임해 연구처장과 산학협력단장 등을 거쳐 지난달 1일 총장에 취임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회 수석부위원장, 한국연구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암호학 분야 대표 연구자인 그는 2017년 대한수학회 최초 여성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