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경기도 A초등학교는 올해 전체 학년이 ‘현장 체험 학습’을 가지 않기로 했다. 작년까지는 모든 학생이 1년에 한 번은 현장 체험 학습을 떠났는데, 올해는 ‘교외 일정’이 없다고 학부모들에게 공지했다. 이 학교 교장은 “같은 지역 학교들이 다 비슷한 분위기”라면서 “원래 현장 체험 날짜도 정했다가 재검토하기로 한 학교도 많다”고 말했다.

지역 학부모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아이 학사 일정을 봤는데 ‘체험 학습’이 없어서 당황스럽다” “학창 시절 추억인 체험 학습을 아예 안 가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올해 현장 체험 학습이나 수학여행을 가지 않거나 미루는 학교가 많다. 최근 법원이 현장 체험 학습 중 사망한 초등학생의 담임에게 유죄를 선고하자 교사들 사이에 “아예 체험 학습을 가지 말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교총이 회원인 교사 40여 명과 협의회를 했는데 대부분 학교가 올해 현장 체험 학습을 보류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달 울산교사노조가 교사 386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81%(314명)가 ‘현장 체험 학습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렇게 교사들이 교외 체험 학습을 기피하는 건 최근 법원 판결 때문이다. 2022년 11월 강원 속초시의 한 테마파크로 현장 체험 학습을 간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주차장에서 후진하던 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담임 교사 B씨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1심 판결에서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버스 기사에게 과실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담임교사가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봤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교사들 사이에선 “학생 수십 명을 교사 혼자 통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데,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면 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결국 “직을 거느니 체험 학습을 안 가겠다”는 학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지금처럼 교사들이 형사처벌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학교의 교외 활동이 사라질 수도 있다”면서 “정부가 현장 체험 학습 시 반드시 지켜야 할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배포하고 교사가 준수했다면 사고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