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산업계뿐만 아니라 교육계에도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40)과 핵심 개발자인 뤄푸리(30) 등 중국 첨단 기술의 총아들 상당수가 중국에서 교육받은 ‘토종 인재’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중국 교육부는 2018년부터 ‘대학 AI 창신(創新) 계획’을 주도하고 있다. 매년 수만 명의 AI 전문가를 쏟아내는 동시에 소수 고급 인력을 선발해 집중 교육하는 ‘정예 육성’을 병행한다. 한국은 이처럼 또렷한 인재 육성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본지는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본사에서 염재호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 이종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강은희 대구교육감과 ‘AI 시대 한국 교육’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딥시크 쇼크’ 어떻게 봤나.
=강은희 “한국이 중국에 비해 이공계 인재 경쟁력에서 상당히 뒤처졌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 실감한 시간이었다. 중국에 의한 2·3차 첨단 기술 쇼크가 또 올 것이라 본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리스크까지 있는 한국이 ‘이공계 인재 균형’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당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종호 “AI 교육을 논하기 전에 한국의 AI 지향점은 무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챗GPT나 딥시크 같은 ‘대규모 AI’와 정면 승부할 수 없다. 작년 미국 정부와 민간의 AI 투자액은 874억1000만달러(약 127조7200억원)다. 미·중이 천문학적인 돈을 쏟는 이 시장에 한국이 끼어들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결국 한국의 특장점을 살릴 분야를 찾아 거기에 맞는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한국은 병원 EMR(전자의무기록) 구축이 상당히 잘돼 있다. AI 개발에 필요한 빅데이터가 이미 다 있다. ‘개인 건강 정밀 맞춤형 AI’ 같은 기술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염재호 “동의한다. 한국이 AI 세계의 ‘고속도로’를 까는 나라가 될 필요는 없다. 고속도로를 달릴 자동차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투자하는 게 맞는다. 미·중 범용 AI에 종속되자는 뜻은 아니다. ‘소버린(주권) AI’는 반드시 필요하다. 전 세계가 검색 엔진으로 ‘구글’을 쓰는데 한국은 ‘네이버’를 쓰면서 창출한 가치가 상당하다. 네이버의 메신저 앱 ‘라인’이 일본·대만·동남아에 정착한 것처럼 한국 특성을 반영한 AI가 아시아 시장을 휩쓸 수도 있다.”
-한국의 AI 인재 육성 시스템의 문제는.
=염재호 “AI 시장은 경쟁력 1·2위인 미국과 중국이 세계적인 범용 AI를 두고 경쟁하고, 그 외 국가들이 부가가치 산업을 노리고 3위 자리를 경쟁하는 구도다. 작년 기준 싱가포르가 3위다. AI를 전공하는 자국 학생뿐만 아니라 외국 인재 유치까지 돈을 아끼지 않는다. 예컨대, 난양공대나 싱가포르국립대에서 AI 박사 과정을 밟겠다는 외국인에게 학비는 물론이고 월 최대 5000싱가포르달러(545만원)를 지원한다. 전 세계서 AI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한국에서 ‘AI 엘리트 1만명’ 육성을 위해 인당 교육비 1000만원씩을 지원한다고 해보자.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1000억원 수준일 뿐이다. 예산 문제가 아니라 한국은 이런 인재 육성 마인드가 자리 잡지 못하는 게 장벽이다.”
=이종호 “한국 정서상 일부 학생만 지원하면 차별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국 산업계에 쇼크를 줄 정도의 핵심 기술은 ‘탁월한 인재’의 손에서 탄생한다. 초·중·고에서 AI 교육을 한다고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AI 기초 지식을 갖춘 사람을 많이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재능 있는 ‘탁월한 인재’를 선발해 키우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바꿔야 하나.
=강은희 “한국 학생들이 기술적·반복적 학습으로 지식은 풍부하지만 생각하는 힘은 약하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대입 제도의 한계라고 본다. 대학의 ‘자율 선발권’을 강화해야 한다.”
=이종호 “한국이 ‘AI 패스트팔로어’가 되려면 산업 수요에 맞는 인재를 제때 육성해야 한다. ‘계약학과(기업 요구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 제도가 있지만, 학과 설립 준비부터 설치까지 수년 걸린다. ‘속도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기존 전공에서 산업계 요구를 흡수할 수 있는 ‘계약 정원제’가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
=염재호 “중국 베이징대는 작년 공대생을 40% 늘렸다는데 한국 주요 대학은 ‘수도권 정비계획법’에 묶여 정원을 거의 못 늘린다. 정치권이 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AI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초·중·고 교육은 어떻게 바꿔야 하나.
=염재호 “AI 시대에 지식을 주입하는 ‘암기식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한국은 공정하다는 착각에 이를 고집한다. 망국적 ‘20세기 DNA’부터 고쳐야 한다. 대학에 제도 운영, 학생 선발에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초·중·고 교육도 중앙 정부가 컨트롤하지 말고 지방 자치에 맡겨야 한다."
=강은희 “교육청들이 공교육에서 아이들의 사고 능력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발굴해야 한다. 대구는 현재 27개 학교가 국제 바칼로레아(IB)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IB는 국제기관이 만든 교육과정·시험으로, 토론·발표 중심으로 수업하고 학생 생각을 묻는 논술형 시험으로 성적을 매기는 프로그램이다. 획일화된 교육으론 AI 시대를 헤쳐갈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이종호 “올해 도입된 AI 디지털 교과서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첨단 기술 시대 교육의 성패는 암기와 문제 풀이에 능한 학생을 기르는 게 아니라, 학생마다 ‘타고난 소질’을 찾아주고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 AI 교과서의 핵심 기능이다. 사실 AI 교과서는 제가 과기부 장관 시절 교육부에 도입을 적극 추천했다.”
- 교육부는 AI 교과서 도입으로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는데.
=염재호 “암기식 교육과 이를 평가하는 대입 체제가 지금의 비정상적인 사교육 시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단순 지식 전달은 AI 교과서를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비효율적인 학원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이 AI 교과서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강은희 “단 한 명의 아이도 교육의 때를 놓치지 않게 하는 데 AI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AI를 이용한 교육이 과도한 ‘학군지 쏠림’ 현상도 완화할 것이라 본다. 수년 전부터 AI 교과서 도입을 준비했는데, 대구 지역 학교 98%가 AI 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이유로 전교조로부터 고발됐다. 열심히 준비한 게 왜 ‘강압’이 되나. AI 교과서가 어느 순간 정쟁 도구로 취급돼 아쉽다.”
=이종호 “첨단 기술 시대 한국이 발전 원동력을 찾으려면 ‘개천서 용 나는 시대’가 다시 와야 한다. AI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줄 것이다.”
☞염재호·이종호·강은희는
염재호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 부위원장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와 19대 고려대 총장을 지냈다. 2023년부터 ‘한국판 미네르바’ 대학으로 불리는 태재대 초대 총장을 맡고 있다.
이종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장을 거쳐 2022~2024년 과기부 장관을 지냈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교사 출신으로 19대 국회의원,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고 2018· 2022년 대구교육감 선거에 당선됐다. 현재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