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흰색 가운을 든 학생이 걸어가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1년 넘게 ‘집단 휴학’했던 의대생들 대부분 이날까지 1학기 등록을 마쳤다./뉴시스

31일 오전 대전 서구 건양대 의대 명곡의학관. 6층 한 강의실에서 학생 20~30명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건양대 의대는 3월 초 개강했지만 지금까지 강의실에 출석한 학생이 2~3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날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이다. 의대 다른 강의실 4곳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작년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1년 넘게 ‘집단 휴학’했던 의대생들이 캠퍼스에 돌아왔다. 대학가에 따르면, 정부가 정한 ‘의대생 복귀 마감일’인 이날까지 전국 40개 의대 중 36곳에서 극소수 학생을 제외하고 사실상 학생 전원이 등록했다. 이날 마감한 인하대·한림대는 등록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4월 1일 추가 등록 신청을 받는 경상국립대·동국대는 학생 전원이 등록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거의 모든 학생이 복귀한 것은 기한 내 등록하지 않으면 제적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복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당수 대학이 이날 수업을 재개하면서 캠퍼스가 모처럼 활기를 띤 곳도 많다. 건양대 의대는 지난해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자동으로 이월돼 전체 학생 400여 명이 올 1학기 등록은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학칙에 4주 동안 수업에 무단결석하면 제적 대상이 된다는 조항이 있어 31일 수업에 안 나오면 제적될 수 있었다. 대학 측은 대규모 제적 사태를 막기 위해 “31일 수업에 참여하라”고 수차례 공지했다. 이에 학생 상당수가 이날 수업에 출석한 것이다.

지역 의대 인근 부동산도 학생들의 복귀를 체감하며 들뜬 분위기다. 경남 진주 경상국립대병원 부근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이근희(42)씨는 “올해 초 개강 전까지도 원룸 문의가 단 한 건도 없었는데, 지난주부터 하루 2~3건씩 꾸준히 원룸을 구하는 의대생들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다들 ‘드디어 학생들이 복귀한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31일 대부분 의대생이 학교로 복귀했지만, 이날 실제 학교 수업에 참여한 학생 수는 학교마다 큰 편차를 보였다. 이날 오전 찾은 대전 중구 충남대 의대는 강의실 곳곳에서 수업이 진행됐지만 출석한 학생은 3~4명 선에 그쳤다. 충남대는 학생 전원이 1학기 등록은 마쳤다. 학교에서 만난 본과생 A씨는 “오늘 수업 참여 학생 수가 늘 것으로 보고 강의실을 큰 곳으로 옮겼는데 3명만 왔다”며 “아직 실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한 의대생들을 중심으로 ‘등록은 하되, 수업은 계속 거부하자’는 목소리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주요 의대 가운데 가장 먼저 학생들 대다수가 등록한 연세대도 이날 수업 참여 학생은 강의실마다 10여 명 정도로 빈자리가 많았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 건물 2층 한 강의실에서는 한 교수가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워 놓고 강의를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학생들은 좌석 앞쪽 세 줄만 채우고 있었다.

한 사립대 의대 학장은 “의협 등 의료계 단체가 학생들이 정말 수업에 들어가도 되는지 명확한 입장을 주지 않은 탓도 있다”며 “복귀를 다짐한 학생도 혹시 학교에 나왔다가 작년처럼 온라인에 신상이 유포되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3월 초 수업에 복귀한 한 의대생은 최근 갑자기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어떻게 생겼나 보러 왔다” “배신하는 X” 같은 댓글 수십 개가 달려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대부분이 출석한 건양대 의대 학생들도 이날 하루 일단 등교하고 이후 계속 수업할지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양대 의대생은 “학교의 제적 안내에 일단 오늘은 출석했지만 계속 수강 여부는 명확히 정리가 안 돼 잘 모르겠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의대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 전원이 복귀한 서울대 의대는 이날부터 1~2주간 온라인 수업을 한다. 일부 고학년 대상 수업은 현장 강의로 진행됐는데, 이날 오전 한 서울대 연건캠퍼스 강의실에서도 10여 명이 수업을 들었다.

학생 전원이 등록한 울산대와 고려대, 경희대도 당분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건국대와 한림대 등은 녹화 동영상 강의를 듣게 하고 출석 체크도 따로 안 한다. 혹시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왔다가 의료계 커뮤니티에 신상이 공개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날 연세대 의대 건물 곳곳에는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습 환경 조성을 위해 출입 시 학생증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팻말이 설치돼 있었고, 대학 직원들이 나와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연세대 관계자는 “신상 유출 방지 등 학생 보호를 위한 조치”라고 했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1년 넘게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나 원룸도 대부분 못 구하는 등 하루 이틀 만에 모든 학생이 복귀하기는 어렵다”면서 “앞으로 교수들이 학생들과 만나 신뢰가 회복되고 주거 문제도 해결되면 속속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의대생 전원 복귀’를 조건으로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전(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대학들은 ‘전원 복귀’ 기준을 ‘정상적 학사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수업에 돌아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의대생이 1학기 등록을 마치고 복귀했지만, 아직 실제 수업 참여라는 마지막 고비가 남은 셈이다. 일부 대학 의대생 사이에서 제적을 피하기 위해 등록은 하되 수업을 거부하자는 움직임도 여전히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1학기 등록만 했다고 복귀라고 보지 않고 정식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실질 복귀율’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진 관계자가 수긍할 정도의 복귀가 이루어진다면 정부는 (내년도 증원 철회)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대학들은 4월 30일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내년도 입학 전형 시행 계획 변경안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이 확정·공표돼야 한다.

환자 단체도 의대생들의 ‘실질적인 수업 복귀’를 촉구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31일 논평을 내고 “학교로 돌아온 의대생들의 용기에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면서도 “제적을 면하려고 복귀한 뒤 수업 거부로 의학 교육을 망치려는 행태는 지탄받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