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사는 회사원 임승희(39)씨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딸의 등교 준비 과정에 예전보다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등하교 때 필요한 각종 안전용품을 빠짐없이 챙겼는지 하나씩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의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충전 여부를 확인하고, 가방에 달아둔 호신용 경보기가 작동하는지 버튼을 눌러본 뒤 ‘30’이라고 적힌 덮개로 가방을 싼다. ‘30’은 스쿨존 내 자동차 제한 속도(시속 30㎞)를 뜻한다. 임씨는 “가방에 넣는 예비용 위치 추적기까지, 아이가 평소 4~5개 용품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최근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각종 호신·안전용품 사용이 크게 늘고 있다. 범죄자를 만났을 때 대항할 수 있는 호신 도구뿐 아니라 주변에 위험 상황을 알리는 휴대용 경보기나 부모에게 실시간 자녀 위치를 알려주는 초소형 위치 추적기 등을 챙겨 다니는 것이다. 지난 2월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비롯해 스쿨존 교통사고까지 학교 안팎에서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내 아이는 스스로 지키자’며 안전용품 구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현재 온라인몰에 ‘어린이 호신·안전용품’을 검색하면 관련 제품 10여 종류가 나온다. 대부분 스스로 외부 공격에 방어가 어려운 초등학생에게 맞춰 개발된 제품들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많게는 5개 넘는 호신·안전용품을 갖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목에는 호루라기나 스마트폰을 줄에 매달아 걸고, 가방에는 버튼을 누르면 강력한 경고음이 나오는 ‘휴대용 경보기’를 매달고 다니는 식이다. 저학년에게 스마트폰을 사주기 꺼리는 부모들은 실시간 위치 추적기를 가방에 달아주기도 한다. 야간 교통사고 위험을 줄여주기 위해 ‘반사경’을 가방에 달기도 한다. 야광 소재로 만든 반사경은 자동차 전조등 불빛을 반사해 운전자가 최대 300m 거리에서도 보행자를 식별할 수 있다.

그래픽=박상훈

학생이 소지하기에 지나치다 싶은 용품들도 있다. 지난달 서울 성동구 한 초등학교에선 학부모가 자녀에게 호신용으로 ‘접이식 삼단봉’을 가방에 넣고 가게 했다가 학교 측 제지를 받기도 했다. 대전 초등생 살인 사건 이후 한 온라인 학부모 카페에는 “학교 보내기 무섭다. 이러다 아이에게 방검 조끼까지 사 입혀야 하는 거 아니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학부모들이 이렇게 안전용품에 의존하는 건 초등학생 대상 범죄·사고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검찰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 대상 폭행·성폭력 등 강력 범죄는 2019년 1514건에서 2023년 1704건이 돼 5년간 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유괴는 138건에서 204건으로 48% 늘었다.

자녀 안전에 대해 우려하는 학부모가 늘자 전국 교육청·지자체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시는 서울 초등학교 608곳 학생 전체에게 버튼을 누르면 100데시벨(dB) 크기 경고음이 나오는 ‘휴대용 안심벨’을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부터 1·2학년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안심벨 11만개를 나눠줄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월 ‘안전관리팀’을 ‘통학안전관리팀’으로 개편하고 구청 관할인 통학로 안전까지 직접 챙기기로 했다.

교육계에선 근본적으로 학교 안팎의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경찰관이 초등학교에 상주해 외부 침입과 학교 폭력에 대응한다. 경찰이 학생 계도와 상담도 한다. 일본에선 퇴직 경찰관이 학교 주변을 주기적으로 순찰하고 위해 요소를 점검하는 ‘스쿨 서포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에만 학생 안전 관리를 맡기기보다 경찰, 구청, 행정안전부 등 여러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