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 총장들이 16일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0명’(3058명)으로 확정할 전망이다. 교육부는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의대생들이 돌아오면 내년도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직 학생들의 수업 복귀율은 낮지만 현실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대학들이 ‘3058명’으로 확정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의대가 있는 40개 대학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는 16일 오후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확정하는 회의를 연다. 교육부는 이날 대학 총장들의 회의 결과를 받아 다음 날 2026학년도 모집 인원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한달에 하루 출석한 의대생… 제적 않고 봐주는 의대
교육계는 대학들이 ‘3058명’으로 확정하는 안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의대 학장들이 “정부가 ‘증원 0명’을 빨리 확정해줘야 학생들이 정부를 믿고 돌아온다”고 요구해왔고, 지금 와서 ‘증원 0명’을 취소하면 수업에 복귀한 학생들만 피해 본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이 3058명으로 확정된 이후에도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에 대해선 대학들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칙에 따라 제적·유급 처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주까지 전체 40개 의대 중 19곳에서 본과 4학년들의 ‘유급’ 시기가 도래한다. 연세대는 15일 본과 4학년 48명에 대한 유급 처분을 확정했다. 고려대도 최근 본과 3·4학년 125명에게 유급을 통보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면 대학마다 수십~수백 명의 집단 유급이 발생한다.
일부 의대에선 제적과 유급을 피하기 위한 의대생들의 각종 ‘편법’이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국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의 학칙을 입수해 살펴봤더니, 가톨릭대·건양대·순천향대·을지대·인제대·원광대 등 6곳은 일정 기간 무단 결석한 학생을 제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 3곳(건양대·순천향대·인제대) 의대생들은 교묘하게 꼼수를 부리며 제적을 피하고 있었다.
인제대의 학칙은 ‘무단 결석 일수가 연속해서 수업일의 3분의 1(30일)을 초과한 학생은 총장이 제적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현재 인제대 의대생들은 대부분 수업에 안 나오고 있지만 제적된 학생은 없다. ‘연속 30일 안 나오면 제적’이라는 학칙을 피하기 위해 하루 이틀 나와서 수업을 듣고 또 장기간 결석하는 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순천향대 학칙에도 ‘무단 결석 1개월을 초과한 자는 제적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의대 측은 학생들이 계속 수업에 안 나오자 재학생 600여 명에게 “무단 결석자 제적 처리 예정일은 개강일 기준 1개월이 초과하는 4월 3일”이라고 공지도 했다. 그러자 의대생들은 지난 3일 이전에 며칠간 수업을 들은 후 다시 잠적했다고 한다.
건양대 의대생들도 ‘무단 결석을 1개월 이상 하면 제적한다’는 학칙을 피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만 수업을 나오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자 대학 측은 학칙의 ‘1개월 이상’을 ‘연속 1개월 이상’으로 볼지, ‘결석일 총합이 1개월 이상’으로 볼지 논의했다. 대학은 결국 연속 30일이 아니라도 총결석일이 30일을 넘기면 제적하기로 하고 의대생들에게 최근 공지한 상황이다.
제적·유급 대상 학생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대학들도 있다. 원광대와 을지대 의대는 무단 결석한 학생을 제적하는 학칙 적용을 미루고 있다. 원광대 관계자는 “현재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어서 출석 체크도 힘들고, 이번 학기 안에 동영상을 다 보기만 하면 수업을 들은 것이기에 ‘제적’ 학칙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국대 의대는 지난 11일 온라인 간담회를 열고 “25학번 의대생들은 ‘수강 철회’를 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원칙대로라면 수업을 거부한 의대생들은 시험 칠 자격이 없어 해당 과목에서 F학점을 받고 유급돼야 한다. 그런데 ‘수강 신청’ 자체를 철회하면 유급을 피할 수 있다. 의대가 있는 건국대 글로컬캠퍼스의 ‘수강 철회일’은 지난달 14일이었지만, 학교는 25학번 의대생들에게만 수강 철회 기간을 18일까지로 연장해줘 유급을 피할 수 있게 해줬다.
대학가에선 “의대생 특혜가 너무 심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다른 학생들에게 대학이 유급 안 시키려고 ‘수강 철회’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제적 처분을 미루는 것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차라리 의대 학칙 개정해서 매년 등록금 내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전업 유급생’ 제도를 만들어라”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숫자도 의대처럼 줄여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길어지자 의대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도 15일 입장문을 내고 “올해는 학사 유연화 계획이 없고, 학칙에 따라 유급되니 학생 스스로 피해가 없도록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의과대학 학사 정상화라는 정부의 목표는 확고하고, 이는 새 정부 출범과 무관하다”면서 “정치적 상황이 여러분에게 학사 유연화 등 여지를 열어줄 것이란 판단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KAMC는 또 “본과 4학년은 수업 복귀 시한을 넘기면 의사 국가 시험의 실기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면서 “부디 현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 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