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철거 중인 건물이 버스를 덮쳐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버스 참사’는 건물 철거 공사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부실투성이였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건물을 철거하는 굴착기가 올라설 흙더미(토사층) 높이가 건물보다 약 11m나 낮았는데도 철거를 시작해, 건물 허리 부분부터 철거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또 건물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할 안전 철제 와이어도 없었고, 재하도급을 통해 철거 현장에 투입된 회사는 생긴 지 1년 4개월 된 곳이었다.
13일 본지가 확보한 철거계획서를 보면, 이 건물은 1층 지면에서 5층 옥탑까지 높이가 23.5m다. 당시 철거 공사를 한 ㈜백솔건설은 옥탑을 허문 뒤 5층부터 아래층으로 건물을 해체하는 것으로 동구청에 신고했다. 전문가들은 보통 이런 방식으로 철거를 하려면 흙더미를 건물 높이만큼 높게 쌓은 뒤 굴착기가 그 위에 올라가게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철거계획서를 준수했다면 사실 안전한 철거 공법 중 하나”라고 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굴착기가 올라선 흙더미 높이는 불과 12.6m였다. 옥탑을 포함한 건물 높이(23.5m)에 턱없이 부족하다. 또 특수 장비를 부착한 굴착기의 암(팔) 길이를 감안한 작업 반경이 약 9m라는 점을 감안해도 건물 꼭대기까지 2m가 모자란다. 옥상에서부터 아래로 철거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철거는 건물 맨 위층이 아닌 중간 부분인 1~4층부터 이뤄졌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사고 당일 오후 4시 22분 건물이 붕괴하기 직전 무게가 30t짜리인 굴착기가 3·4층 쪽 철거를 하려고 건물 안으로 일부 들어온 것도 확인했다. 이때 이미 건물은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다는 추정이 나온다. 사고 직전 대피했던 굴착기 기사 조모씨는 경찰에서 “굴착기가 올라탔던 흙더미가 무너지면서 굴착기가 추락했고 건물도 붕괴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현장 주변에 먼지가 날리는 것을 막으려 뿌렸던 물 탓에 흙더미가 무너져 건물을 덮친 것이 먼저인지, 건물이 무너진 뒤 흙더미가 함께 쓸려 내려갔는지 조사 중이다.
안전 장치도 부실했다. 철거 때 건물 각 층의 기둥을 제거할 경우 보통 임시 철제 기둥을 세워 건물이 안정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철거 회사는 임시 철제 기둥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건물이 인도 쪽으로 무너지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여러 줄의 쇠줄(철제 와이어)을 걸어야 하는데 공사 당일 이 절차도 무시했다.
철거를 맡은 백솔건설은 작년 2월 설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거기다 불법 재하도급이 이뤄진 정황도 드러났다. 재개발조합이 현대산업개발에 공사를 맡겼고, 현대산업개발은 건물 철거 업체인 한솔기업에 일을 줬다. 하지만 한솔기업이 다시 백솔기업에 재하도급을 준 것은 불법이라는 게 경찰 판단이다. 이 과정에서 철거 공사비는 3.3㎥당 28만원에서 최소 4만원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재하도급을 받은 백솔기업 역시 빨리 철거해서 비용을 아끼려고 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날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합동으로 실시한 현장 감식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철거 때 건물이 넘어지지 않도록 건물 아래 쪽에 흙과 각종 자재를 채우도록 돼 있는데, 이 양이 부족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