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빌딩 내 변호사 사무실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 관련해 방화범 천모(53)씨가 사건 발생 5개월 전부터 방화를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천씨는 범행 전 “(상대)변호사 사무실을 불바다로 만들기 위해 휘발유와 흉기를 샀다”는 취지의 글도 남겼다.
대구경찰청은 “천씨의 컴퓨터를 조사해 지난 1월 변호사 사무실 방화 범행을 암시하는 글을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천씨는 이 글에서 “(상대)변호사 사무실을 불바다로 만들고자 휘발유와 흉기를 구매했다”고 썼다. 천씨는 지난달 9일 대구 수성구 우정법원빌딩 203호실에 침입해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당시 203호실 안에 있던 김모 변호사 등 2명에게는 흉기를 휘둘렀다. 이로 인해 천씨를 포함해 김 변호사 등 7명이 사무실 내에서 모두 숨졌고 빌딩에 있던 50명이 연기 흡입 등으로 다쳤다. 경찰 관계자는 “천씨가 사건 발생 최소 5개월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재개발 아파트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한 데 대한 천씨의 불만이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천씨는 총 5건의 투자금 반환 소송을 벌였고, 이중 1건에서 승소한 것 외엔 모두 패소하거나 항소심을 진행 중이었다. 지난 1월 변호사 사무실 방화를 암시한 글을 적은 시점에도 이미 3건의 재판에서 패소한 상태였다. 천씨가 방화한 사무실 소속 배모 변호사는 천씨를 상대로 승소한 재판의 변호인이었다. 사건 당일 배 변호사는 다른 재판 일정으로 인해 화를 피했다.
경찰은 또 방화 사건 대상이 된 우정법원빌딩 건물주인 60대 A씨를 비롯한 5명을 업무상과실치상 등 혐의로 입건했다. A씨 등은 빌딩 내 각 층의 비상구로 연결되는 통로와 비상구를 가리키는 유도등을 사무실 벽으로 가로막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당시 피해자 대부분이 비상구 및 비상계단의 존재나 위치를 몰라 대피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피해자의 경우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지만, 외부로 통하는 1층 비상구가 잠겨있어 다시 건물 위로 올라간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경찰은 203호실 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점과 비상구 인지 여부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203호실은 천씨가 불을 지르고 흉기로 위협했기에 비상구 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피가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평소 소방시설 등 관리 소홀이 피해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건물주 등에게 업무상 과실치상 등 혐의를 적용했다”고 했다.
경찰은 천씨를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하고 건물주 A씨 등 5명은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형화재로 인한 참사 방지를 위해 비상구·비상 계단 등 중요 피난 시설을 폐쇄·차단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