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처참한 현장 - 25일 경기 안성시 서운면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현장. 이날 오전 다리 상판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찍은 사진이다. 상판이 최고 52m 콘크리트 교각 아래에 떨어져 깨져 있다. 소방 당국이 매몰된 근로자들을 구조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경기 안성의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다리 상판 구조물이 붕괴하면서 근로자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사고는 25일 오전 9시 49분쯤 경기 안성시 서운면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콘크리트 교각(다리 기둥) 위에 올려진 상판 5개 중 4개가 종잇장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상판 위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0명이 최고 52m 아래로 추락해 매몰됐다. 소방 당국은 오전 10시 15분 전국의 모든 소방서에 비상을 거는 ‘국가 소방 동원령’을 발령하고 구조에 나섰지만 10명 중 4명이 숨지고 5명이 중상을 당했다. 1명은 경상을 입었다. 숨진 4명 중 2명은 한국인, 2명은 중국인이다.

상판 무너지는 순간 - 25일 오전 경기 안성시 서운면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다리 상판이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리는 모습. 붕괴 직전 다리 밑을 통과한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경찰은 “콘크리트 교각 위에 상판을 올리는 작업을 하던 도중 상판이 균형을 잃고 줄줄이 무너졌다”며 “구체적인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세종고속도로는 경기 구리와 세종을 잇는 134㎞ 고속도로다. 사고 지점은 9공구로 시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중견 토목 업체인 장헌산업이 하도급을 받아 내년 말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었다. 토목 전문가들은 업체가 부실 시공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교각 위에 상판을 올리는 공법은 흔한 방식”이라며 “멀쩡한 공사장에서 또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상판 5개 올리다 도미노 붕괴… 인부 10명 52m 추락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면, 산비탈 쪽 상판에서 뿌연 연기가 나더니 상판 가운데 부분이 갑자기 ‘V’ 자 모양으로 휘어졌다. 순식간에 붕괴가 시작됐다. 연이어 상판 3개가 추락했다. 목격자들은 상판 4개(총길이 210m)가 무너지는 데 5초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폭탄이 터지듯 ‘쾅’ 하는 소리가 들렸고 집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고 했다.

당시 업체는 ‘거더(girder·상판) 론칭 공법’으로 다리를 짓고 있었다. 콘크리트 교각을 먼저 세운 뒤 지상에서 만든 상판을 올리는 방식이다. 보통은 크레인으로 상판을 들어 올리는데 사고가 난 현장은 지상에 도로와 하천이 지나가 거더 설치 장비인 론처를 활용하는 방식을 썼다.산비탈에서 상판을 밀어서 교각 위에 얹는 방식이다. 론처는 교각 위를 수평으로 오가면서 상판을 미는 역할을 한다.

그래픽=백형선

소방 당국은 론처가 이동하던 중 상판이 균형을 잃어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영상을 보면 론처가 상판 5개를 모두 교각 위에 얹은 뒤 산비탈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갑자기 상판이 붕괴했다. 유동호 한국교량및구조공학회장은 “상판은 임시 구조물로 콘크리트를 덮기 전까지는 완전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라며 “시공 도중 론처가 상판의 한쪽 면을 잘못 건드려 하중이 쏠렸을 수 있다”고 했다.

상판이 줄줄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선 “보통 상판은 철근으로 엮어두는 경우가 많아 하나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다 같이 무너진다”고 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상판이 교각에 제대로 고정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1991년 3월에 경기 하남 팔당대교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도 상판이 균형을 잃고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당시 다리 아래서 작업하고 있던 근로자 1명이 깔려 숨졌다. 작년 4월 경기 시흥 서해안 우회도로 공사장에서도 다리 상판이 부서지면서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공사 단계마다 구조물의 역학을 검토하고 천천히 장비를 움직여야 하는데 급하게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사고 영상을 보면 론처가 지나치게 빨리 움직인다는 것이다. 근로자들 간에 수신호가 맞지 않아 순간적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백형선

상판의 설계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동호 회장은 “다리의 상판을 설계할 때는 강풍이나 차량의 하중까지 검토한다”며 “설계 단계에서 상판에 가해질 하중 등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했다. 상판은 지상에서 제작해 교각 위에 얹는데 상판 자체가 설계와 달리 부실하게 제작됐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2차 붕괴 가능성을 우려했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사고 당시 충격이 교각 전체에 미쳤을 것”이라며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더라도 해당 구간을 전부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 구간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호반산업, 범양건영 컨소시엄이 낙찰받아 공사 중이다. 주관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고 하도급사는 장헌산업이다. 공사를 발주하고 감리를 맡은 곳은 한국도로공사다. 총사업비는 1925억원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작년 4월 전남 무안군 남악신도시에 지은 ‘힐스테이트 오룡’ 아파트에서 5만 건이 넘는 하자가 접수돼 공개 사과한 적이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작년 3~8월 기준 하자 판정을 가장 많이 받은 건설사로 꼽히기도 했다.

국토부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려 사고가 발생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